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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힐 호텔이 홍대 클럽에 ‘상호 변경’ 요구한 이유는?

최미수1 0 1,274 2018.02.06 19:15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클럽으로 꼽히는 홍대 앞 명월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클럽으로 꼽히는 홍대 앞 명월관

■ 클럽 ‘명월관’은 한식집 ‘명월관’의 이름을 더럽히지 마라?

서울 홍대 앞의 클럽 ‘명월관’을 운영하는 김은희 대표(44)는 지난달 초 한 법무법인이 보낸 내용증명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명월관 서비스표권 무단사용에 대한 법적 조치 예정 통보’라는 제목이었습니다. SK네트웍스로부터 사건을 위임받았다는 법무법인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명월관은 워커힐 호텔이 1994년 숯불갈비 전문식당의 상호로 서비스표권을 출원한 이름이고, SK네트웍스는 2010년 워커힐을 흡수합병하면서 이 서비스표권도 승계했다.” 즉 명월관이라는 이름은 워커힐 호텔만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타인이 이 이름을 상호로 사용하면 상표법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이라는 겁니다.

SK네트웍스가 홍대 명월관에 보낸 내용증명 통지서

SK네트웍스가 홍대 명월관에 보낸 내용증명 통지서

통지서는 “클럽 명월관이 SK네트웍스와 어떤 협의도 없이 명월관 이름을 인터넷 광고 등에 무단사용해 일반인에게 오인·혼동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이런 행위에 대해 SK네트웍스는 법에 보장된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이며, 그 전에 서비스표권 침해 행위를 스스로 시정할 기회를 주겠다”고 적었습니다.

통지서가 나열한 시정 요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앞으로 명월관 상호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확약서 제출 ▲명월관 이름이 들어간 물건의 폐기·철거 후 증빙자료(간판 철거 사진, 광고 삭제한 인터넷 캡처 사진 등) 제출 ▲향후 인터넷에서 명월관을 검색했을 때 클럽 명월관이 나오지 않게 조치

통지서는 “이상의 요구사항에 대해 11월30일까지 납득할 만한 조치가 없으면 부득이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소송 등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지난 11월에 열린 홍대 클럽 명월관의 22주년 파티를 알리는 포스터

지난 11월에 열린 홍대 클럽 명월관의 22주년 파티를 알리는 포스터

■ 20년 된 홍대 클럽 조상님이 유명세 도용?

김 대표는 통지서를 받고 “그야말로 황당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명월관이라는 이름으로 20년 넘게 영업을 해왔는데 갑자기 이름을 바꾸라니 날벼락이죠. 게다가 그쪽은 갈빗집이고 저희는 문화공간인데 성격이 전혀 다르잖아요. 특히 제가 기분 나빴던 게 그 통지서에 보면 ‘당신들이 우리 유명세 이용해 그동안 이득을 취했다’는 식으로 돼 있는데 너무 기가 막히고 화가 났어요. 오히려 반대잖아요. SNS만 봐도 사람들한테 더 많이 회자되는 건 우리 쪽인데.”

홍대 명월관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클럽으로 꼽힙니다. 1994년 ‘황금투구’라는 이름으로 처음 홍대에 문을 열었고, 다음해 명월관으로 이름을 바꿔 지금껏 언더그라운드 음악 클럽으로 유명세를 떨쳐왔습니다.

‘클럽’이란 말도 ‘일렉트로닉 음악’이라는 말도 생소하던 1990년대부터 명월관은 홍대 클럽 문화를 주도하는 ‘핫 플레이스’였습니다. 배우, 디자이너, 평론가 등 이름만 대면 알 법한 문화예술계 유명 인사들이 명월관의 단골이었습니다.

2014년 12월 가수 김장훈은 홍대 클럽 명월관에서 새 앨범 <살고 싶다 >  발매 기념 공연을 했다. 이선명 기자

2014년 12월 가수 김장훈은 홍대 클럽 명월관에서 새 앨범 <살고 싶다> 발매 기념 공연을 했다. 이선명 기자

이상은, 강산에, 김장훈, 십센치 등 명월관 무대를 거쳐간 뮤지션도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최근에는 이상순과 김C 등이 디제잉을 맡은 파티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이효리와 아이유, 전인권 같은 ‘셀러브리티’ 손님들의 발길도 여전합니다.

홍대 클럽 문화가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일변도로 상업화·획일화 된 지금도 명월관은 언더 음악 문화의 상징과 같은 공간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비주류 음악을 고집하는 탓에 명월관의 영업은 신통치 못한 편입니다.

김은희 대표는 “명월관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문화가 자생할 수 있다는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겁니다. 그는 “지금까지 타협하지 않고 언더 문화를 지켜왔다는 상징성 때문에도 명월관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명월관 이름으로는 마지막으로 개최되는 올 연말 파티의 홍보 포스터

명월관 이름으로는 마지막으로 개최되는 올 연말 파티의 홍보 포스터

■ 워커힐호텔 “한식집 ‘명월관’ 이미지 관리 위해”

취재 결과 SK네트웍스는 홍대 명월관 뿐 아니라 전국에서 명월관 이름으로 영업하는 모든 음식점과 유흥업소 등에 같은 통지서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SK네트웍스 관계자는 “올해부터 워커힐 호텔이 독자 브랜드가 되면서 전반적으로 브랜드 관리를 철저히 하려는 과정에서 그런 통지서가 가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1963년 개장한 워커힐 호텔은 1977년부터 글로벌 호텔 체인인 쉐라톤과 계약을 맺고 ‘쉐라톤 워커힐 호텔’이라는 이름을 써왔습니다. 그러다 올해부터 쉐라톤과 제휴를 끊고 ‘워커힐 호텔’이라는 자체 브랜드로 운영 중입니다. 워커힐이 최근 중국과 대만 등 중화권 관광객들로부터 ‘화커(워커힐의 중국식 발음) 산장’이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인지도와 브랜드 파워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워커힐 호텔이 운영하는 숯불갈비 전문점 명월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과 잘 꾸며진 외관 덕분에 돌잔치와 가족모임 장소로 인기가 높다. 워커힐 호텔 홈페이지 캡처

워커힐 호텔이 운영하는 숯불갈비 전문점 명월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과 잘 꾸며진 외관 덕분에 돌잔치와 가족모임 장소로 인기가 높다. 워커힐 호텔 홈페이지 캡처

SK네트웍스 관계자는 “워커힐 호텔이 운영하는 명월관은 국내 한식 분야에서 저명성이 입증된 곳이고 매출 규모도 국내 호텔 중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라면서 “외국 관광객이 자주 찾는 특급호텔 입장에서 브랜드 이미지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유흥업소 등에 우리의 권리를 알리고 협조를 구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만약 타당한 이의 제기가 있을 경우 상대방과 충분히 협의해 원만히 해결하려고 한다. 애초 통지서를 보낸 취지도 당장 소송 등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게 아니라 계도 차원에서 보낸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홍대 명월관은 SK네트웍스로부터 내용증명 통지서를 받은 뒤 페이스북 계정 이름을 명월관에서 MWG로 바꿨다.

홍대 명월관은 SK네트웍스로부터 내용증명 통지서를 받은 뒤 페이스북 계정 이름을 명월관에서 MWG로 바꿨다.

■ “이름 빼앗으려는 대기업”

그러나 “법을 우선시하지 않는다”는 SK네트웍스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통지서를 받은 쪽은 압박과 부담감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대기업이 법무법인을 통해 내용증명을 보냈는데 그걸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내가 뭘 잘못했나 덜컥 겁부터 났다”고 말했습니다.

홍대 명월관은 통지서를 받은 뒤 급한대로 가게 간판과 창문에 시트지를 붙여 명월관 글자를 가렸습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 계정 이름도 명월관에서 영어 이니셜을 딴 ‘MWG’로 바꿨습니다. 혹여나 또 상호와 관련된 불상사가 생길까 MWG에 대한 서비스표권도 출원했습니다.

홍대 명월관은 최근 간판 이름을 시트지로 가렸다. 왼쪽이 과거 모습, 오른쪽이 명월관 글자를 가린 현재 모습. 명월관 제공

홍대 명월관은 최근 간판 이름을 시트지로 가렸다. 왼쪽이 과거 모습, 오른쪽이 명월관 글자를 가린 현재 모습. 명월관 제공

클럽에 자주 드나드는 손님들은 “명월관 이름을 빼앗으려는 건 대기업의 횡포”라고 주장합니다. 일부는 청와대 홈페이지의 ‘국민 청원’ 운동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단골손님 신보경씨의 말입니다.

“명월관이 올해 22주년 파티를 할 정도로 역사가 오랜 곳인데 그렇게 오래 쌓인 추억과 상징성을 훼손하는 느낌이 들어서 화가 나요. 대기업이 영세하게 운영되는 클럽을 상대로 법적 대응 운운하는 것도 괘씸하고요. 이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맞서서 명월관 이름을 지키고 싶지만 딱히 방법이 없어 다들 속만 태우고 있어요.”

명월관 입구 정면 왼쪽 상단에 있던 가게 상호가 사라지고 검은색 배경만 남았다. 명월관 제공

명월관 입구 정면 왼쪽 상단에 있던 가게 상호가 사라지고 검은색 배경만 남았다. 명월관 제공

■ 100년도 더 된 이름… 질곡의 역사를 담은 장소

거슬러 올라가면 명월관이라는 이름의 역사는 100년이 훌쩍 넘습니다. 1903년 지금의 광화문 사거리 일민미술관 자리에 ‘명월루’라는 이름의 조선요릿집이 문을 열었습니다. 명월루는 일제의 조선 침탈이 본격화하면서 경성에서도 주가를 높여가던 화월루, 국취루 등 일본요릿집을 모방한 것이었습니다.

명월루는 대한제국 황제의 음식상과 황실 연회를 담당하는 궁내부 전선사(典膳司) 장선(掌膳) 벼슬을 하던 안순환이 인수하면서 명월관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안순환은 일제가 황실을 장악하며 대궐에서 쫓겨난 숙수(궁중 요리사)들을 대거 고용했습니다. 1909년 관기제도 폐지로 갈 곳이 없어진 궁중 기녀들도 불러모았습니다.


명월관 기생들의 가무 장면을 담은 일제 강점기의 사진엽서. 명월관은 서울의 대표적 요정이기도 했지만 재주 많은 기생과 명창이 몰리는 대중예술 공연장 역할도 했다.

명월관 기생들의 가무 장면을 담은 일제 강점기의 사진엽서. 명월관은 서울의 대표적 요정이기도 했지만 재주 많은 기생과 명창이 몰리는 대중예술 공연장 역할도 했다.

‘임금이 받는 상차림을 명기들의 춤·노래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소문이 나면서 명월관은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장안의 명사와 갑부들이 앞다퉈 몰려들었고, 명월관은 고관대작과 일본 관리, 친일파, 외국인 등이 주로 드나드는 일류 사교장이 됐습니다. 조선 통감부의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도 단골손님 중 하나였습니다. 그 화려함과 유명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필부들조차 ‘명월관 음식’ ‘명월관 기생’을 평생 소원으로 꼽을 정도였습니다.

1919년 화재로 명월관이 소실된 뒤 안순환은 재력가 이종구에게 명월관 간판을 넘겼습니다. 이종구는 지금의 종로3가 피카디리극장 자리에 2층 양옥 건물을 올리고 명월관 간판을 다시 걸었습니다. 간판값으로만 당시 돈으로 3만원을 지불했다고 합니다. 이종구가 경영하던 명월관은 3·1운동 이후 독립지사들의 연락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1930년대엔 당대 엘리트인 신문기자 등 언론인과 문인들의 사교장소로 많은 일화를 남겼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명월관을 조선 최고의 명소로 만든 안순환. 안순환은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요리사로 알려졌지만 실제론 행정관리였다. 그는 망해가는 나라의 녹봉을 받으면서 동시에 관직에서 얻은 음식 지식을 활용해 명월관을 운영한 ‘투잡족’이었다. 그는 일제에 협력해 사익을 취했다는 이유로 지금도 비판받는다. 안순환은 명월관을 넘긴 뒤에도 지금의 명동 인근에 ‘식도원’이라는 조선요릿집을 열어 많은 돈을 벌었다.

일제 강점기에 명월관을 조선 최고의 명소로 만든 안순환. 안순환은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요리사로 알려졌지만 실제론 행정관리였다. 그는 망해가는 나라의 녹봉을 받으면서 동시에 관직에서 얻은 음식 지식을 활용해 명월관을 운영한 ‘투잡족’이었다. 그는 일제에 협력해 사익을 취했다는 이유로 지금도 비판받는다. 안순환은 명월관을 넘긴 뒤에도 지금의 명동 인근에 ‘식도원’이라는 조선요릿집을 열어 많은 돈을 벌었다.

■ 독점적 권리 주장할 수 있나

요컨대 명월관은 한국 최초의 근대적 조선요릿집이었고,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기업형 유흥업소였습니다. 한국전쟁 때 종로의 명월관 역시 화재로 없어졌지만, 이후에도 도처에서 명월관이라는 이름의 요릿집과 유흥주점이 성업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지금의 종로3가 피카디리극장 자리에서 1920년대부터  한국전쟁 때까지 영업한 명월관 전경. 오른쪽 입구 기둥에 걸린 현판에 ‘조선요리 명월관’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지금의 종로3가 피카디리극장 자리에서 1920년대부터 한국전쟁 때까지 영업한 명월관 전경. 오른쪽 입구 기둥에 걸린 현판에 ‘조선요리 명월관’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지금도 포털 사이트에서 명월관을 검색하면 전국의 음식점과 주점 수십곳이 주르륵 나옵니다. 심지어 일본 도쿄와 모리오카, 캄보디아 프놈펜에도 명월관이라는 이름의 고깃집과 냉면집이 영업 중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족발집이나 닭갈비집의 ‘원조’를 따지는 것처럼 명월관 상호의 고유성과 배타성을 주장하는 것이 과연 온당하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전국에 여러 곳인 ‘백악관 나이트클럽’처럼 흔하게 쓰이는 이름에 독점적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겁니다.

SK네트웍스가 보유한 갈빗집 명월관의 서비스표권은 단순히 명월관 세 글자가 아니라 도안과 문자가 포함된 그림상표 형식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상표법에 밝은 한 변호사는 “명월관이라는 이름의 ‘주지·저명성’이 워커힐 호텔의 갈빗집에만 독점적으로 인정된다고 보기 힘든 점이 있다”면서 “명월관이라는 문자 자체를 상호에 쓰지 못하게 한 것은 법적으로 다퉈볼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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