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몰랐던 조용필의 삶, 그가 뒤에서 해온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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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를 '가왕(歌王)'이라 부른다.
그도 아니라면 애초에 조용필이라는 사람의 수수함 때문일까.
조용필은 "'선생님', '가왕' 이런 말들이 부담스럽"다면서 "그러려고 노래하고 음악한 거 아니거든요. 음악이 좋아서 한 것인데 그런 말들 들으면 저한테는 부담으로 옵니다"라고 말한다.
1968년 록그룹 앳킨스로 데뷔한 조용필은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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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한 분야의 경지에 오른 사람의 여유일까, 아니면 몸에 밴 겸손함일까. 그도 아니라면 애초에 조용필이라는 사람의 수수함 때문일까. 조용필은 "'선생님', '가왕' 이런 말들이 부담스럽"다면서 "그러려고 노래하고 음악한 거 아니거든요. 음악이 좋아서 한 것인데 그런 말들 들으면 저한테는 부담으로 옵니다"라고 말한다. "음악이 좋아서 한 것"이라는 그의 말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관련기사] 50년차 가수 조용필의 의외의 고백
1968년 록그룹 앳킨스로 데뷔한 조용필은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았다. 까마득한 세월이다. 정규앨범만 19장이고, 비정규앨범까지 포함하면 50장에 달하는 음반을 발매했다. 대중가요계의 역사와 함께 한 산증인이다. '고추잠자리', '꿈', '그 겨울의 찻집', '단발머리', '돌아와요 부산항에', '비련', '여행을 떠나요', '창밖의 여자', '친구여', '한오백년', '허공' 등 대표곡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한 문단을 통째로 할애해야 할 정도다.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일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50년이라는 세월동안 한결같을 수 있었을까. 여러가지 이유로 어떻게든 버틸 수는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놀라운 업적을 가요계에 새겨 넣고, 최고의 자리에서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조용필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건 2013년 발표한 19집 앨범 <헬로(Hello)>였다.
'가왕' 조용필의 통 큰 기부
여기까지 알고 있다면 조용필을 절반만 아는 것이다. 인간 조용필은 자신이 받은 사랑을 세상을 위해 돌려줄 줄 아는 사람이다. 2004년 심장 재단에 자선 콘서트의 수익금 24억 원을 출연했고, 2009년에는 조용필장학재단을 설립해 소아암 어린이를 비롯해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하고 있다. 2010년 콘서트 수익금은 세브란스 어린이병원에 입원한 소아암 어린이 500여 명을 위해 기부했다.
조용필은 2003년 사랑하는 아내를 심근경색(수술 후 심장마비로 사망)으로 잃었다. 가슴 아픈 사연이 아닐 수 없다. 덧없음을 느껴 좌절하고 무너졌을 법도 하지만, 조용필은 자신의 영향력을 심장 관련 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쓰기로 한 듯하다. 이렇게 매년 3억 원 이상을 기부하고 있다고 한다. 정작 조용필은 오랫동안 전셋집에 살았었다고 하니 더욱 놀랍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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