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임시완 "어떤 작품이 와도 가능하도록 저를 백지화시켜요"

모신정 기자 2023. 10. 12.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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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47 보스톤'서 마라토너 서윤복 역 맡아 
배우 임시완 / 사진=플럼이엔씨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배우 임시완을 떠올리면 극과 극의 다양한 이미지들이 뇌리를 스친다. 대표작 '미생'의 장그래와 '변호인'의 진우 등을 통해 청년의 순수함과 타협을 모르는 추진력 등을 선보였다면 영화 '비상선언'과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에서는 소름 돋는 극랄한 악인의 면모를 보이며 관객들을 놀라게 했었다. 

임시완이 올 가을 소개한 신작은 영화 '1947보스톤'이다. '1947 보스톤'은 광복 이후 손기정 감독, 남승룡 코치, 서윤복 선수가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우리의 이름으로 국제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기까지의 험난하고 뜨거웠던 여정을 담은 작품. 임시완은 아픈 홀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냉면 배달부터 철거 잡역부까지 마다하지 않고 돈벌이를 하면서도 달리기를 향한 꿈만큼은 저버리지 않으려는 청년 서윤복 역을 연기했다. 

극의 초중반부 일장기를 달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한 손기정은 금메달 수상 직후 시상대에서 화분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린 탓에 일제의 탄압에 놓이게 된다. 10여년의 시간이 흐른 후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마라토너로서 엄청난 자질을 지닌 서윤복을 발견한 손기정과 남승룡이 그의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보스톤 마라톤대회'에 출전시키려고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영화의 중반부 이후까지의 주요 줄거리였다면 극 후반 20여분 가량은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대회에 출전한 서윤복이 오롯이 달리는 과정에 집중했다. 

배우 임시완 / 사진=플럼이엔씨

서윤복이 '하트 브레이크 언덕'으로 불리던 뉴턴힐을 지나 뛰어든 개 때문에 넘어져 위기를 겪지만 다시 일어나 달려 끝내 2시간 25분 39초로 1위를 차지하는 이 장면들에서 실제 관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오는가 하면 극중 애국가를 소리내어 부르는 반응까지 영화에 동화된 모습이 쉽게 목격된다. 체지방을 6%대까지 낮추며 마라토너에 최적합한 몸을 만드는가 하면 이틀간 물조차 끊으며 근육을 표현하고 촬영기간을 포함해 8개월이 넘도록 마라톤 훈련을 받으며 서윤복을 살아낸 임시완에게서 관객들은 마치 진짜 마라톤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볼 때와 같은 순수한 관중의 체험을 하게 된다. 

배우 임시완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한국이 만났다. 인터뷰 예정 시간 50분을 꽉 채운 그다운 성실한 답변 속에 허투루 흘려 보내는 단어는 없었다. 선한 인물을 만났건, 악인을 연기했건 매번 기대를 넘어서는 놀라운 성취감을 관객에게 안기는 그의 차기작에 벌써 기대감이 고개를 든다.   

- 실존인물 서윤복을 연기하기로 결정했을 때 부담은 없었나.

▶ 이 작품에 들어오기에 앞서 대단한 실존 인물 역을 맡는다는 자체가 대단한 책임감을 동반할 거라고 생각했다. 서윤복 선생님만큼은 안되고 태극마크를 달고 직접 뛰는 국가대표 선수들만큼은 안될지라도 이 작품에 임하는 동안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국가대표의 마음으로 살자고 생각하고 임했다. 

- 극중 마라토너들이 손기정 감독과 남승룡 코치에게 훈련 받는 장면에서 선수들이 뛰다가 구토를 하거나 다리에 쥐가 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실제 훈련이나 촬영 과정중 유사한 경험이 있나. 

▶ 훈련하다가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달리기를 혼자서 연습할 때는 그런 경험이 많다. 그날의 컨디션이 안좋거나 어떤 날은 무리해서 그런 경험들이 있다. 어느 날은 오버페이스를 해서 내 목표를 깨보겠다다고 하다가 어지러워서 눈앞이 안보일 정도로 빈혈을 느낀다거나 뛰고 나서 한동안 다리를 절룩 거릴 정도로 통증을 느낀 적도 있다. 

배우 임시완 / 사진=플럼이엔씨

- 마라톤의 훈련 강도는 어느 정도였나.  

▶ 국가대표 분들의 훈련량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배우라기보다 선수에 가깝게 생활했다. '1947보스톤'을 선택하고서 크랭크인까지 3개월 남짓 전부터 촬영 기간 5개월을 포함해 총 8개월동안 마라톤의 훈련을 받고 달렸던 것 같다. 

- 캐릭터 연구를 위해 실제 마라톤 국가대표 선수들의 취재 과정이라던가 만남의 과정이 있었나. 

▶ 목표를 끝내 완결지어야 한다는 생각은 국가대표 분들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매순간 가졌던 마음인 것 같다. 이번에 그 마음을 더 극대화시켜야 했다. 서로의 목표지점이 다를 뿐이었던 것 같다. 저는 연기 분야에서 국가 대표분들은 각자의 종목들에서 대표의 마음으로 임하는 것 아닐까. 저보다 그분들의 열정이나 목표를 향한 마음가짐이 더 뜨거웠을 것 같으니 제 감정을 더 극대화시키려고 했다. 특별히 선수들을 취재하거나 하는 접근은 하지 않았다. 저로서는 명쾌하게 목표를 완결지으려는, 완주하려는 목표의식에만 초점을 뒀다. 그 시대를 살아간 인물의 대변인으로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당시 각 분야의 서윤복 선생님같은 분들이 모여서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것 아닐까. 

- 함께 호흡한 선배 배우 하정우가 이미 '국가대표'에서 국가대표 역을 연기한바 있다. 특별히 조언을 주거나 영감을 준 측면이 있나. 

▶ 그보다는 포괄적 부분에서 많은 걸 배웠다. 아시겠지만 정우 형은 세상에 대한 지식히 해박한 분이다. 아는 것도 많으시고 살아가는 일에 대해 복합적 상식과 지식에 대해 많이 들려주셨다. 컷과 컷 사이 혹은 촬영이 끝나고 함께 하는 시간에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오히려 연기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런 이야기들이 더 주가됐다. 정우 형께 배우고 싶었던 부분 중 하나가 있는데 저는 연기를 할 때 하나에 집중해서 몰입하기에 시야가 좁아지는 느낌을 많이 가지고 있다. '저 때 왜 저렇게 했을까'하고 아쉬움이 남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정우 형은 컷과 컷 사이에 긴장도에 대해 완급 조절을 잘 하시더라. 그때 집중력을 내려 놓는 작업에도 능하셨다. 반면 촬영에 들어가면 엄청난 집중도가 표출된다. 그런 모습을 배우고 싶었다. 

- 연기력에서도 스타성에서도 최고로 인정받는 선배 배우들과 호흡을 이뤘다. '변호사' 송강호, '미생' 이성민, '비상선언' 이병헌, '1947보스톤' 하정우의 공통점이 있다면?

▶ 제가 선배님들만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분들만의 유머 요소가 있으시다. 그걸 느꼈다. 저는 늘 진지하고 진중하게만 살아왔다. 선배님들 모두 늘 유머러스한 포인트가 고유의 영역으로 있었다. 그게 신기하더라.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 지점이 저로 하여금 선배님들께 더 다가가고 싶다는 마음을 만들더라. 선배님들의 큰 공통점이었다. 

배우 임시완 / 사진=플럼이엔씨

- '유퀴즈'를 통해 이병헌의 집에 찾아간 사연이 유명해졌다. 하정우의 집에도 다녀왔나.  

▶ 정우형님께서 제가 식단을 계속 하고 있으니 쇠고기를 사주시겠다고 했다. 식단을 계속 하고 있어서 촬영 끝날 때까지 먹는 것이 자유롭지 못했다. 정우 형이 저에게 '소고기 사줄게. 먹으러 가자'고 하시더라. 닭가슴살의 대안이 되니 일반식 중 그나마 죄의식이 덜한 소고기를 사주신다더라. 연말 무렵 아마 1월 1일 빨간날이었다. 그날 시간이 됐기에 정우 형과 둘이 만나서 먹었다. 되게 어색하고 뻘쭘했다. 사람을 처음 사석에서 만나고 하면 어색하거나 서먹하거나 그럴수 있지 않나. 저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불편하면 그냥 '불편하구나'하고 느끼면 된다. 제 강점은 어색하고 서먹한 것을 잘 견디는 점이다.(웃음)

- 서윤복이 보스톤 마라톤에 출전해 하트브레이크 언덕을 뛰어오르는 장면을 보면 그동안 임시완이 얼마나 극도의 훈련 과정을 겪었을지 저절로 느껴진다. 한계치를 느끼며 달렸을 것 같은데. 

▶ 물리적으로 따지면 그랬다. 이번 작품이 몸을 만드는데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기도 하고 촬영하면서도 많이 뛰었다. 촬영하면서 더 고생이었던 건 근육을 계속 자극을 줘서 근육이 탄탄하게 만들어야 했다는 점이다. 근육은 시간이 지나면 금방 꺼져버리지 않나. 컷과 컷 사이에 근육의 텐션을 유지하기 위해 전문 트레니어님과 근육 운동을 이것 저것 계속 했다. 그게 달리는 것보다 더 고생이었다. 

- 실제 마라톤 대회에 출전도 해봤나. 

▶ 달리기대회도 틈틈이 나갔다. 가장 좋은 기록으로 들어온 것이 10km를 41분에 뛴 것이다. 제 인생에서 가장 빨랐던 기록이다. 지금도 못깨고 있다. 극을 위해 훈련 받을 때는 실제로 달릴 때보다 강도가 더 높게 훈련받았다. 

- 2~3일간 물도 안먹으며 훈련했다던데.

▶ 단수를 하면 수분이 마르면서 근육이 조금 더 쪼개진다. 사실상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됐을지 모르지만 전문 피티 트레이너와 상의하면서 근육을 더 쪼개는 효과를 보려고 했다. 이왕 하는 거 더 해보고 싶었다. 이틀 가량 물을 끊으니 앞이 안보이더라. 안개가 낀 것처럼 아찔아찔했다. 상체 노출신이 있어서 웃통을 벗고 운동하는 장면 때문에 그렇게 했는데 강제규 감독님이 그 장면을 강조하시지는 않았다. 제 스스로 연기적 만족도를 위해 한계지점까지 도전해 본 것이다. 

- 원래 연기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편인가. 

▶ 이번 작품이 좀 더 그런 환경이었던 것 같다. 국가대표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들어와야 겠더라. 그런 마음이 작용했다. 만약 이 과정을 다시하라고 한다면 단수도 하고 급하게 몸도 만들고 식단을 하는 등 전제조건이 있다면 작품을 결정하기 앞서 심도 있는 고민을 거쳐야 할 것 같다.(웃음)

- 체지방을 6%까지 줄였다는 것이 큰 화제가 됐다. 애초 목표를 두고 진행했나. 

▶ 원래 체지방 6%를 목표로 하지는 않았다. 서윤복 선생님의 자료 사진을 보니 몸이 다부지시더라. 그걸 따라가려고 했다. 서윤복 선생님의 모습을 보여 드리려면 외형적 모습을 따라가야 겠더라. 6% 자체가 내 목표는 아니었다. 지금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체지방은 두 배인 12%다. 

- 배우로서 최고의 성과를 내기 위해 평소 관리한다거나 하는 점이 있다면. 

▶ 매번 촬영할 때의 고생을 아니 미리 분배시켜야겠다는 생각이 크다. 작품이 있건 없건 간에 고생의 총량은 똑같다. '고생을 미리 해놓자'는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라톤이 더욱 취미가 됐다. 최근에는 복싱에도 빠져 있다. 틈날 때마다 복싱도 하고 있다. 

- 촬영중이 아닐 때 지키는 원칙이나 루틴이 있다면. 

▶ 연기자로서 언제 어떤 작품이 들어올지 모르기에 어떤 것이라도 담아낼 수 있도록 '나를 만들어놓자'고 생각한다. 어떤 캐릭터라도 받아들일수 있도록 배우로서도 사람으로서도 백지화시키는 것에 가장 주안점을 둔다. 이런 목표를 두고 다양한 도전을 해왔다. 서서히 배우 임시완의 색깔과 방향성이 정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그 방향성을 극대화시켜서 임시완이기에 할 수 있는 어떤 것들, 어떤 가치관들을 하나의 기둥으로 묵어내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 호주에서 보스톤 마라톤 분량을 거의 다 찍었다고 들었다.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나. 

▶ 3주에서 한달정도 거의 뛰기만 했다. 러너들에게는 작은 로망이 있는데 새로운 공간에 가면 꼭 그곳에서 뛰어보고 싶다. 저도 멜버른에서도 더 들어간 발라렛이나 질롱이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뛰면서 러너로서의 욕구도 해소시켰다. 이곳 저곳 다 뛰어다니고 개인적으로도 뛰었다. 마침 저희가 촬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호주 현지 지역 신문사에서 취재를 나오셔서 사진을 찍어 가셨다. 다음날 신문 1면에 저희가 대서특필 됐더라. 제가 뛰고 있는 모습이 1면에 나오니 기분이 남다르더라.  

- 이번 작품이 서윤복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대중들께 널리 전한 것 같다. 

▶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서윤복 선수에 대한 이야기는 저도 대본을 보고 알았다. 이렇게 의미있고 대단한 역사적 인물이신데 많이 알려지실 수 있게 돼 다행이다. 우리 작품을 통해 손기정 선수뿐만 아니라 남승룡, 서윤복 선수에 대해서도 많이 아시고 자랑스러워 해주시면 좋겠다. 

- 강제규 감독 현장의 특징은 무엇이었나. 

▶ 감독님이 영화 만드시는 과정은 자세히 모르지만 완성된 영화에서 가슴 뭉클함이 느껴지는 걸 볼 때 정말 좋은 영화를 만들어주셨다는 생각이 든다. 시사회에서 보자마자 감독님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촬영 과정에서 어떤 특별한 요구를 하시거나 압박을 주시는 일이 없었다. 저는 영화를 만드는 일 자체가 감독님이 만들어놓은 어떤 공간, 놀이터 같은 공간에서 배우들이 뛰어놀고 그것을 담아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강제규 감독님이 만들어 놓은 놀이터라는 공간이 굉장히 컸다. 제가 어디서어떻게 놀건간에 다 받아들여지고 또한 범주가 예상됐다. 정말 한층 더 감독님께 존경심이 생겼다.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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