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父子) 간 알바 쟁탈전..명퇴·취업난의 뒷모습

윤나영 2016. 1. 25. 11:1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장·노년층 시장 잠식에 청년층은 경비원으로
'생계'를 건 대결…세대 간 갈등 갈수록 심화

[아시아경제 윤나영 기자] "○○버거 세트 하나, 5400원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는 주문과 계산을 담당하는 종업원들의 손이 무척 분주했다. 그런데 자세히 뜯어보니 종업원들의 연령대가 천차만별이었다. 10대로 보이는 청소년에서부터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도 있었다. 이 매장의 '알바생(아르바이트하는 종업원)'은 총 8명. 이 중 2명이 60대를 훌쩍 넘긴 '어르신'이었다.

인구 고령화 현상이 심각해지고 조기 퇴직과 청년 실업이 늘어나면서 '알바 시장'에서도 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구직 자리를 놓고 '세대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10~20대 알바가 차지했던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주유소 등에 장년층과 노년층 알바생이 대거 진입했다. 실제 전국 맥도날드에는 55세 이상 아르바이트생(시니어 크루)이 240여명 근무하고 있다. 맥도날드 관계자는 "시니어 크루들은 매장에서는 풍부한 사회 경험을 통해 탁월한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춰 고객의 서비스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천국'에 따르면, 지난해 50대 이상의 아르바이트 구직 이력서 등록 건수는 2만4682건이었다. 2010년 3232건과 비교하면 5년 새 663.7% 증가한 것이다. 또다른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에서도 지난해 50대 이상의 아르바이트 구직자가 전년 대비 26.1% 증가했다.

알바 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영화 '인턴'에서와 같이 노년층 인턴을 채용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포스코·CJ·유한킴벌리·GS리테일 같은 대기업들은 사회 공헌 활동의 하나로 '시니어 인턴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시니어 인턴제도'는 만 60세 이상을 시니어 인턴으로 채용하면 보건복지부가 최대 6개월 동안 인건비의 50%를 지원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청년실업과 취업난에 허덕이는 2030에게는 이러한 현상이 곱게 보일 리가 없다. 대학 3학년 재학 중인 박 모씨(25)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등록금을 내가 보태야 하는데 최근에는 어르신들 때문에 알바자리 구하기가 더 힘들어졌다"며 "이제 취업준비를 하려면 기업에서 인턴 경험도 있어야 하는데 시니어 인턴제도 같은 걸 만들어서 한창 일해야 되는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노인들한테 주겠다는 것 같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반면 젊은층이 '반격'에 나선 일자리들도 있다. '퇴직자들의 리그'로 꼽혔던 아파트 경비와 택시기사가 대표적이다. 최근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20~30대 젊은 경비원을 고용하는 아파트가 크게 늘고 있다. 아파트 경비업체 관계자는 "아무래도 안전 문제에 갈수록 주민들이 민감해지다 보니, 치안을 제대로 책임질 수 있을 만한 젊은 경비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1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20대 취업자 중 단순노무종사자는 전년 동월 대비 5만1000명이 늘어나 가장 큰 증가세를 보였다. 김하영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원은 "본격적인 구직활동을 하는 25~29세 연령층에서 안정된 직업으로 분류되는 관리자·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의 취업자 수가 감소하고 경비·배달·건물 청소 등 단순노무 종사자가 상대적으로 크게 늘어났다"며 "젊은층이 생계를 위해 나이 드신 분들이 하던 일에까지 뛰어들면서 일자리의 질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10~20대의 전유물 또는 용돈벌이용으로 인식되던 아르바이트 자리나 비정규직에 어르신과 취업 못한 젊은층이 대거 쏟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세대 간에는 '생계'를 건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베이비붐 세대들의 퇴직이 본격화되고 청년실업이 심화되면서 과거 특정 세대와 계층에 집중됐던 불안정한 일자리가 전 세대, 전 계층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아르바이트로 대표되는 불안정한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간 경쟁은 앞으로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나영 기자 dailybest@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