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을 막걸리에 바쳤다, 9년 뒤 하루 5만 병 나가는 '지평'

이상재 2018. 11. 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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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세 김기환 지평주조 대표
93년 된 양조장 숙직실이 신혼집
매번 같은 맛 되게 하려 시스템화
유통망 늘리고 제3공장까지 계획
김기환 대표가 지평양조장 간판을 들고 막걸리 제조 과정과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이상재 기자]
요즘 막걸리 시장에서 ‘핫’한 브랜드 중 하나가 지평막걸리다. 지평은 경기도 양평에 있는 면(面) 단위의 작은 마을이다. 그런데 전국 곳곳에서 “지평막걸리”를 외치는 주문이 잦아졌다. 덕분에 이 막걸리를 만드는 지평주조의 올 예상 매출은 160억원. 수량으로는 750㎖들이 1900만여 병이다. 하루 5만2000병쯤 된다. 국내에 1000여 개의 막걸리 브랜드가 있는데, 업계에선 서울의 ‘장수’, 부산 ‘생탁’, 인천 ‘소성’ 등에 이어 지평을 5~6위로 본다.

이런 돌풍의 주역은 올해 37세의 젊은 사장인 김기환 지평주조 대표. 2009년 지평막걸리 경영을 맡아 연 2억원짜리 동네 술도가를 9년 만에 80배로 키웠다.

“2009년은 국내를 넘어 일본까지 수출하던 막걸리 열풍이 꺾일 때였어요. 하지만 맛이 아까웠어요. 지평막걸리는 밀가루로 입국(粒麴·곰팡이 배양)을 하는 전통방식으로 빚는데, 발효하면서 묵직하면서도 깔끔한 맛을 냅니다. ‘이런 맛이라면 도전할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에 아버지를 설득해 제가 경영을 맡았지요.”

지평막걸리 설립자는 고(故) 이종환씨인데, 1960년대에 김 대표의 할아버지인 고 김교섭씨가 인수했다. 김 대표는 93년 역사를 가진 막걸리회사의 4대(代) 최고경영자(CEO)인 셈이다. 수없이 많은 문제에 맞닥뜨렸다. 술맛이 매번 고른 게 아니어서다. 지평은 예부터 물맛이 뛰어나 막걸리도 유명했지만, 그때까지는 그야말로 ‘손맛’이었던 것. 김 대표는 “감(感)에 의존하다 보니 똑같은 맛을 유지하지 못했다”며 “그래서 아예 짐 싸들고 지평으로 내려갔다”고 말했다. 마침 그해 가을 결혼을 하면서 술도가 구석에 있는 세 평짜리 숙직실에 신혼살림을 꾸렸다.

“신혼 시절을 막걸리와 함께 살면서 지평막걸리 고유의 맛을 찾았습니다. 사람마다 품평이 조금씩 다르지만 (지평은) 대개는 깨끗하면서 꽉 찬 감칠맛이 난다고 얘기합니다. 탄산이 들어가 청량감이 있는 것도 특징이지요.”

무엇보다 균질(均質)하지 않은 맛을 균질하게 시스템화하는데 매달렸다. 밤낮으로 공정을 관찰하고 원재료 품질, 밀 입국 과정, 위생상태 등을 모두 기록하면서 시스템을 잡았다. 품질관리는 지금도 엄격하다. 주 1회 탱크를 청소하고 매일 2~3회 온·습도를 체크한다. 특히 젊은 층, 여성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예쁜 막걸리’ ‘부드러운 막걸리’로 주목받으면서 저절로 홍보도 됐다. 한편으론 유통망을 늘렸다. 김 대표는 “대리점과 소매업주에게 동기 부여가 될 만한 가격을 제시해 멀리 보고, 함께 가는 영업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지평양조장은 1925년 지어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막걸리 공장 중 하나다. 건물 곳곳에 조선과 일본의 건축양식이 남아 있다. 현재 지평주조는 지난 6월 강원도 춘천에 제2공장을 짓고 생산 규모를 3배(월 500만 병)로 키웠다. 김 대표는 “얼마 전 양평군과 미팅을 하면서 ‘지평양조장을 원형대로 복원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며 “제3공장은 다시 양평에 지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막걸리 열기가 다시 식을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그는 “기본에 충실한 맛, 전국 유통망을 갖췄다. 더 탄탄하게 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평=이상재 기자 lee.sangja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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