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가까워도 사람 안 와요" 충무로 상인들의 눈물

윤홍집 2018. 11. 2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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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의 30%도 되지 않는 주말 매출에 자영업자 '한숨'
높은 임대료에 사무실은 공실..게스트 하우스 늘지만 소비력 없어
전문가 "지자체, 지역 시장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야"

지난 25일 12시께 충무로 거리. 점심시간임에도 인적을 찾을 수 없고 가게들은 대부분 영업하지 않고 있다. [사진=윤홍집 기자]

"명동·종로와 가깝지만 사람이 없어요…충무로는 외딴 섬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충무로 자영업자)

주말만 되면 인적 없이 텅 빈 거리 탓에 충무로 인근 상인들이 울상 짓고 있다. 이른바 '도심공동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소비력을 가진 상주인구가 대거 빠져나가 버린 것.

지난 22일(목요일)과 25일(일요일) 두 차례에 걸쳐 방문한 충무로 2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이 눈에 띄던 22일과 다르게, 25일은 인파를 찾아볼 수 없고 가게도 대부분 영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근 자영업자들에 따르면 과거 한국 영화의 대명사라 불렸던 충무로는 빛이 바랜 지 오래다.

영화사는 이전해 찾아볼 수 없고 일대를 먹여 살렸던 인쇄업도 쇠퇴하면서 소비력이 급감했다. 명동·종로와 인접해 주말에 유동인구가 많을 거라는 인식이 있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텅 빈 '유령도시'에 가깝다는 후문이다.

■ "길 하나 건너면 명동인데..." 주인 인건비조차 나오지 않는 현실

충무로 인근 자영업자들은 대부분 주 5일제로 영업하고 있다. 드물게 주 6일 운영하는 가게가 있지만 점심 장사만 하고 저녁 장사는 하지 않는게 보통이다. 이마저도 직원을 두지 않고 '나홀로 장사'를 할 수 있는 자영업자만 해당된다.

2008년에 고깃집을 시작해 올해 11년째가 되는 A씨는 "토요일엔 점심 장사만 하는데 평일 매출의 1/10도 되지 않는다"며 "그나마 종업원 없이 할 수 있어서 가게를 열지만 내 인건비조차 나오지 않는다. 아예 노는 것보다는 한 푼이라도 버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열고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3~4년 전에는 주말 매출액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면서 "주말에 사람이 아예 없다. 명동과 을지로, 종로와 모두 가깝지만 충무로는 외딴 섬이라고 봐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충무로에서 약 38년간 고깃집을 운영해 이름난 B씨에게도 최근 주말은 가혹했다. B씨의 남편은 약 10년간 충무로 상인회 회장도 맡은 바 있기도 하다.

B씨는 "토요일에 열긴 하는데 예전 매출에 3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라며 "우리는 오래되고 이름도 알려져 버틸 만 하지만 그렇지 않은 가게는 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 5일제가 정착되면서 회사원들은 주말에 출근하지 않고, 명동에서 유입되는 인구는 줄기 때문에 주말 장사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카페 영업 2년 차 인 C씨는 처음부터 주5일 장사를 고려하고 시작했다.

C씨는 "전 주인이 주말에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처음부터 평일 장사만 보고 들어왔다"며 "길 하나 건너면 명동인데 이렇게 사람이 안 올 수 있나 싶다"며 말끝을 흐렸다.

지난 25일 12시께 충무로 거리. 점심시간임에도 인적을 찾을 수 없고 가게들은 대부분 영업하지 않고 있다. [사진=윤홍집 기자]

■ 사무실 떠나고 자리한 게스트 하우스…"충무로에선 소비하지 않아"

인근 공인중개사에 따르면 충무로의 주말이 이렇게 썰렁해지기 시작한 건 최근 3~5년 사이라고 전해진다. 공인중개사들은 명동에서 충무로로 사람을 끌어올 요소가 없는 데다가, 충무로가 명동에 인접해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까지 했다.

40년 가까이 충무로에서 부동산을 했다는 D씨는 "임대료가 비싸다 보니 대기업과 개인 사무실에 공실이 나고 있다"며 "그 자리에 게스트하우스가 들어찼는데 여행객들은 충무로에서 소비하지 않는다. 명동에서 다 소비하고 충무로에서는 잠만 자기 때문에 충무로는 편의점만 늘고 자영업자들은 빈손이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 근방 자영업자 70~80%는 가게를 내놓은 상태로, 권리금이 없는 곳도 많다"면서 "손익분기점을 넘겨 실질적으로 돈을 가져가는 곳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현실을 짚었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 E씨의 의견도 비슷하다.

E씨는 "주말에 장사 안되는 게 어디 충무로뿐이겠느냐"면서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화거리를 기획해 지역을 살린다는 말이 있었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명동에서 충무로로 인구가 유입될 요소가 없다"고 전했다.

그는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우량기업은 떠나고 계약직·파견직이 자리를 채웠다"면서 "계약직은 주말 근무도 적고 소비 여력도 많지 않다. 충무로에 인원이 줄어든 것도 맞지만 질적 구성원이 낮아진 것도 주말 상권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답했다.

지난 25일 충무로 인근 가게들이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가게 문을 닫고 있다. [사진=윤홍집 기자]

■ 도시재생 기획하고 있지만…

갈수록 심화되는 도심공동화 현상에도 지자체는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중구청은 서울시와 협의해 충무로 일대를 인쇄특구로 지정하려 하고 있지만 아직은 기획 단계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해 서울 인근에 소재한 모 대학 부동산학과 F교수는 "사람을 집적시킬 수 있는 시설을 유치하는 게 우선"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명동에 가면 쇼핑부터 식사·문화생활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굳이 충무로까지 와야 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충무로에 주말 인구가 유입되지 않는 건 어찌 봤을 때 당연한 결과"라고 밝혔다.

F교수는 "하다못해 상인에게 설문조사라도 해서 지역 시장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며 "발로 뛰는 행정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편, 중구청 관계자는 "충무로에 도심공동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다른 지역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보니 한곳에 집중할 여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충무로는 인구 유입할 요소가 적고 인쇄도 사양산업에 속하다 보니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며 "아직은 기획 단계지만 충무로를 인쇄특구로 지정해 인쇄업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서울시와 기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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