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뚫고 공사장 수십곳 돌아"…'건설현장 불법노조 추적' 열혈형사

이비슬 기자 2023. 2. 2.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중부서 김지훈 형사 '불법 노조 활동' 11명 입건 특진
"귀신소리 틀어놓고 민원 유발"…정상 노조활동 피해 없도록"
김지훈 서울 중부경찰서 형사(강력3팀·경위)가 27일 서울 중부경찰서에서 뉴스1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1.27/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서울=뉴스1) 이비슬 기자 = 태풍이 몰아치던 지난 여름 서울 중부경찰서 강력팀 소속 김지훈 형사(경위·36)는 폭우를 뚫고 공사장 수십곳을 찾아 헤맸다. 분명 피해자가 있는데, 당한 일을 말하려는 사람은 없는 사건을 맡았다.

수화기 건너편에 숨어버린 피해자들은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김 형사는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보기로 결심하고 진술조서 작성을 위한 노트북과 프린터를 챙겨 차를 몰았다.

피해자들이 보복을 두려워한 실체는 바로 '불법 노조'였다. 약 5명~10명 단위로 노조 형식만 갖춘 집단이 "공사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건설사에 돈을 요구하는 일은 건설현장마다 비일비재했다.

지난달 27일 중부서에서 만난 김 형사는 "조폭이 자릿세를 뜯는 정도의 수준이었다"며 "성실하게 활동하는 노조에 오히려 피해를 주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노조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범죄자' 수사가 시작됐다. 공사 현장에서 만난 소장들은 분명 피해자였지만 매번 손사래를 치거나 고개를 가로저었다. 중부서가 입수한 건설현장 불법 피해 첩보도 모두 물거품이 될 위기였다.

경찰에 진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다른 공사현장에 찾아와 괴롭힐까 두려워 진술을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 공사가 지연되는 것보다 이들에게 차라리 돈을 주는 편이 손해를 덜 보기 때문이었다.

김 형사는 "피해업체 관계자들이 바쁜 공사 현장에서 경찰서를 오가는 것도 부담으로 느꼈다"며 "진술을 받기 위해 장대비를 뚫고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봬러 현장에 갔다"고 떠올렸다.

김지훈 서울 중부경찰서 형사(강력3팀·경위)가 27일 서울 중부경찰서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2023.1.27/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한 공사장에 무려 20개 노조가"…'노조전임비' 악용

경찰서에 홀로 남아 샌드위치 빵 조각을 뜯으며 밤을 지새는 날들이 계속됐다. 불법노조는 건설현장에 노조원 채용을 강요한 뒤 해당 노조원이 일을 하지 않아도 사용자가 법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노조전임비'를 받아내는 수법을 쓰고 있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제24조에 따르면 사용자 동의를 받은 근로자는 근로를 제공하지 않고도 노조 업무를 전임할 수 있다. 근로자 권리인 노조활동을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다.

그러나 짧으면 약 2개월, 길면 1년 가까운 공사현장에서 노조 활동도, 근로도 하지 않으며 매달 100만원이 넘는 노조전임비를 받아 챙기는 자행은 서슴없이 이뤄졌다. 한 공사 현장에 이같은 수법으로 달라붙는 불법노조만 20개가 넘는 경우도 있었다.

김 형사는 "채용하지 않겠다고 하면 공사장 앞에 승합차 5~10대를 놓고 큰 소리로 노동가를 재생하다가 경찰이 확인할 때 잠시 소리를 줄이기를 반복했다"며 "귀신 소리, 아기 울음소리를 재생해 주변에서 민원이 들어오도록 방해하는 등 수법도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김 형사가 수사한 피해자는 수도권에 있는 연 매출 20억~30억원대 중소 건설업체가 다수였다. 피해 업체 수만 20여곳, 피해액만 수십억원에 달했다.

직접 발로 뛰며 얻은 피해자 진술에 더해 '빼도박도 못하는 증거'가 필요했다. 불법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김 형사는 간부들이 생활비 등으로 노조비를 사용한 지출내역 자료와 단체협약서를 확보했다.

그는 "나중에 검사, 판사까지도 보셔야하니 엑셀 파일을 일일이 확인하며 보고서를쓰느라 애를 먹었다"며 "팀 후배들이 선뜻 나서 '형은 해당 사건 수사만 하라'며 다른 사건을 맡아줘 고마웠다"고 말했다.

윤희근 경찰청장(경찰청 제공) 2022.12.4/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수사 노하우요? 사건 해결 의지죠"

김 형사는 지난해 말 불법 노조원 11명을 입건하고 간부 2명을 송치한 성과로 1계급 특진했다. 이례적으로 경찰 최고 수장인 윤희근 경찰청장이 지역 관서인 중부서에 찾아와 김 형사 어깨에 계급장을 달아줬다.

김 형사와 만난 그날도 불법 노조원 수사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잠시 짬을 내 마주 앉은 그는 영화 속에서 상상 가능한 강력팀 형사 그대로였다.

운동화에 청바지, 얇은 패딩점퍼를 입고 나타난 그의 표정엔 웃음기가 가득했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김 형사는 특유의 눈썰미로 '스토킹 살인' 김병찬 도주 경로를 밝혀 검거에 핵심 역할을 하기도 했다.

김병찬 마지막 행적이 기록된 강남 일대 폐쇄회로(CC)TV 수십개를 들여다보던 김 형사 눈에 김병찬이 잡아탄 택시가 정확히 걸려든 것이다. CCTV 사각지대에서 택시가 잠시 멈춰 손님을 태우고 달리는 모습을 동물적 감각으로 포착했다.

김 형사는 다른 수사관과 비교해 구속영장 신청 건수가 많은 경찰이다. 구속 사유가 분명한 범죄자의 추가 범행을 막고 더 철두철미하게 수사한다는 의미다. 절차가 많아지기 때문에 사건 담당 수사관으로서는 번거로운 일이지만 마다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즐기는 형사'라고 칭한 8년차 형사는 아직도 "검거 현장에서 수갑을 지를(채울) 때" 가장 짜릿하다고 말했다. 수사 노하우를 묻는 말에는 "반드시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성과를 언급할 때마다 과장, 팀장, 팀원, 사건 담당 검사까지 주변에 공을 돌렸다. 대화 틈에 "세상에는 아직 정의가 남아있다"고 거듭 강조하던 형사는 낯간지러운 듯 웃으면서 또렷한 목소리로 약속 하나를 남겼다.

"범죄로 피해를 보신 분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죄를 지은 사람은 잡아서 처벌하는 업무를 운명으로 생각하고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b3@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