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하늘서 참사 날 뻔'..교수와 국토부의 비리

이호을 2015. 7. 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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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공관제 100% 국산화, 선진국 기술 의존 탈피"

지난해 6월 초 국토교통부는 보도자료를 하나 내놓습니다. "전량 수입하던 항공관제시스템, 본격 국산화"라는 제목입니다. 내용인즉슨, 그동안 해외 수입에 전량 의존해오던 항공관제시스템을 완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항공관제시스템은 항공기가 이륙해서 공항에 착륙할 때까지 항공기의 위치와 운항정보 등 항공기를 관제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공항 관제탑에 제공하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항공기의 안전 운항에 필수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관제시스템을 100% 해외에서 수입해 들여와야 했으니, 막대한 외화가 지출됐습니다. 그런데 국토부는 2007년부터 무려 7년에 걸친 연구개발 끝에 항공관제시스템을 국산화하는데 드디어 성공했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개발비로는 345억 원이나 되는 막대한 돈이 들어갔습니다.

국토부 발표만 놓고 보면 항공 관제 분야에서 100% 기술 자립을 선언한 것이니 국내 항공업계의 쾌거라고 해도 좋을법한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심지어 해외 수출까지 전망된다고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그런데 국토부는 이런 훌륭한 성과를 내고서도 달랑 2쪽 짜리 보도자료만 내고 말았습니다. 대대적으로 치적을 홍보해도 부족할 판에 지나치게 겸손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왜 그랬을까요?

■ 감사원 "부실 개발, 조직적 비리 혐의"

답은 1년 뒤 감사원이 내놨습니다. 국산화에 성공했다는 항공관제시스템이 실은 알고보니 기준 미달의 부실 시스템이라는 감사 결과를 공개한 것입니다. 이렇게 부실 제품을 만들어놓고 국산화 성공 운운했다니 사실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감사원이 들여다보기 전에 사업 관리자인 국토부 공무원들은 도대체 왜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요? 345억 원이나 들인 사업인데 말입니다. 감사원은 공무원과 개발자들이 한통속이었다고 설명합니다.

■ "국제 기준 미흡한 제품에 엉터리 성능 검사 합작품"

감사원이 밝힌 사건의 전모는 이렇습니다. 연구책임자인 사립대 교수는 지난해 항공관제시스템을 최종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을 만들면서 항공 관제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하는 국제기술기준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교수는 해당 시스템이 국제기술기준을 만족하는 것처럼 최종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했습니다.

보고서가 엉터리로 만들어졌더라도 제품의 품질이 적합한지 잘 따져서 걸러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품질 적합도를 검증하는 기관으로 시스템 개발 사업를 수행한 사립대와 같은 재단에 속한 전문대가 선정됩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해괴합니다. 전체 사업을 관리하는 국토부 담당 사무관은 애당초 이 전문대를 검증기관으로 점찍은 듯 합니다. 이 전문대가 검증기관 지정 심사에서 탈락하자, 사무관은 심사 과정에 개입해 비협조적인 일부 심사위원을 교체해버립니다. 그 뒤 한 번 더 심사를 거쳐 이 전문대가 검증기관으로 선정된 것입니다. 인력과 시설이 미흡하고 전문성도 부족해서 검증 능력이 떨어지는데도 말입니다. 이 전문대 역시 해당 시스템이 국제기술기준에 만족한다는 검증 보고서를 제출했고, 국토부 담당 사무관은 이 시스템에 '합격' 증명서를 발급해줍니다. 그 결과 성능이 의심스런 제품이 "100% 국산화에 성공한" 시스템으로 둔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국토부 담당자는 이런 부정이 탄로날까 얼마나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었을까요?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서도 보도자료는 단 2쪽 짜리만 내놓을 수 밖에 없었던 속사정은 바로 이런 거였을 것입니다.

■ "국토부 전현직 공무원들간 금품수수"

그렇다면 궁금증이 생깁니다. 국토부 공무원이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요? 사실 이 부분이 명확치는 않습니다. 감사원은 조직적인 비리 혐의가 있다면서 국토부 전현직 공무원들과 사립대 교수 등을 검찰에 수사 요청했습니다. 감사원은 계좌추적권이 없기 때문에 금품이 오간 사실 등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감사원 조사로 드러난 사항은 이렇습니다. 사업을 관리했던 국토부 담당 과장은 2012년 1월 퇴직을 한 뒤, 사업을 수행하는 해당 사립대의 연구교수로 취업을 합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에는 공무원이 재직 중 직접 처리한 업무를 퇴직 후에 취급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토부 과장이 재취업을 할 당시에는 사립대는 이 금지 규정에서 빠져 있었습니다. 이 과장은 자신이 관리하던 그 사업에 연구원으로 들어가 별다른 역할은 하지 않으면서 2억여 원을 받았다는 게 감사원의 설명입니다.

이 과장은 이번에는 자신의 부하로 있던 국토부 사무관에게 시스템 검증과 관련한 청탁을 합니다. 과거 자신이 상관이었던 점을 이용해 로비를 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입니다. 2013년 4월, 앞서 말했던 전문대가 우여곡절 끝에 검증기관으로 선정되고, 같은 달 국토부 사무관은 이 전직 과장에게 금품을 요구해 천4백만 원을 받았다고 감사원은 밝혔습니다. 이 사무관은 지난해 자신이 모시던 또다른 과장도 항공관제시스템 검증 업무에 일자리를 알선해주고 4백만 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도대체 사무관이 뭐길래 전직 과장들한테 돈을 받아 챙기나 의문이 생깁니다. 이 사무관은 자신의 업무를 6년 넘게 해왔고, 과장들은 퇴직 직전에 잠깐씩 과장직을 거쳤다 나가기 때문에 해당 업무에서는 사무관이 실세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감사원은 추정합니다.

결국 국토부 퇴직 간부가 옮겨가서 하고 있는 사업이니까 현직 사무관 입장에선 '전관예우' 차원에서 무리해서라도 사정을 봐 주게 되고, 또 자신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다는 자신감 속에 여기에 돈까지 오고 가니까 비리가 똬리를 튼 게 아닌가 추측할 따름입니다.

■ "하늘에서 세월호 참사 날 수 있었다"

이렇게 개발된 항공관제시스템의 성능은 어떨까요? 감사원이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에 의뢰해서 시스템 안전성을 재검증해봤습니다. 그랬더니 프로그램 오류가 100개 넘게 발견됐습니다. 메인시스템이 고장으로 작동을 멈출 경우 보조시스템이 가동되고, 메인시스템이 정상화되면 보조시스템은 다시 가동을 멈춰야 하는데, 보조시스템이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가는 문제도 발견됐습니다. 이렇게 되면 자료가 이중처리돼 시스템에 과부하가 생기고 결국 안전성에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고 감사원은 설명했습니다. 하늘에서 오고가는 항공기가 서로 부딪치지 않도록 관제하는 시스템이 고장을 일으킨다면 대형 항공사고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습니다. 감사원은 "이 시스템을 사용할 경우 하늘에서 세월호 참사가 날 수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난해 6월 개발이 완료된 이 시스템은 국내 공항 단 한 곳에서도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3월 지역 공항 한 곳이 시스템 발주를 한 뒤 이 사업단이 제안서를 접수해 심사를 진행하던 도중에 감사원 감사가 시작돼 결정이 보류됐습니다. 사정이 이럴진대 해외 수출은 애당초 어불성설이었습니다.

국토부 전현직 공무원들과 사립대 교수 등 8명은 검찰 수사를 받게 됐습니다. 사기극의 결말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말입니다. 검찰 수사로 비리의 전모가 드러날 것입니다. 사법적 처벌도 이뤄질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실패로 끝난 사업에 들어간 345억 원은 어떻게 되돌릴까요? 이 가운데 250억 원이 나랏돈, 국민 세금인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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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을기자 (hele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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