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한국형 엥떼르미땅’... 포스트 봉준호 가능할까?
민주당의 ‘한국형 엥떼르미땅’... 포스트 봉준호 가능할까?
  • 서믿음 기자
  • 승인 2020.02.14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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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4관왕 소식에 이어 포스트 봉준호를 양성할 문화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예술인 지원책을 들고나왔다. 이름하여 ‘한국형 엥떼르미땅’(Intermittent/예술인 고용보험). 극빈에 시달리는 예술인에게 최소한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내용이 골자다. 예술은 배고픔을 먹고 산다지만, 가난 앞에 장사 없고, 그럼 포스트 봉준호 탄생 가능성도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엥떼르미땅은 공연 및 영상 분야에 종사하는 예술인을 지원하는 프랑스의 특별 실업보험 제도로 1936년부터 시작됐다. 국가와 사업주(9~13.8% 부담), 예술인(4.8%)이 함께 마련한 예산으로, 실직 상태이거나 잠시 일감이 없는 예술인(1년에 507시간 근무 조건)에게 근무 기한과 임금 등을 고려해 최대 243일까지 수당을 지급한다.

국내에는 비슷한 개념으로 ‘예술인 고용보험’이 있다. 다만 수당 지급 기한이 최대 180일로 상대적으로 짧고, 보험료 전액을 예술인이 납부해야 해 부담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납부 여력이 없는 예술인이 태반이었는데,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8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연 소득 2,000만원 이하 비중이 81%로, 대다수가 극빈층에 해당했다. 전업 예술인 평균 소득은 연 1,281만원으로 한 달에 100만원에 불과했다.

대다수 분야가 그렇겠지만, 예술 분야는 유독 자금난에 시달리는 경우가 빈번하다. 창작활동을 위한 밑천은 고사하고 생활비가 없는 경우가 많아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부 사업의 경우 프로젝트 형태로 공모하다 보니 창작활동보다 제안서 작성에 더 많은 시간이 들어가기도 했다. 또 때로는 ‘예산’을 볼모로 예술인들의 ‘정치적 성향’을 통제하는 ‘블랙리스트’에 적잖은 예술인이 피해를 보기도 했다. 정치 성향에 따라 부익부, 빈익빈 상황이 벌어진 것인데, ‘한국형 엥떼르미땅’을 통해 그런 상황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민주당은 기존 고용보험과 별도로 연 1,000억원의 정부 재원을 마련해 예술가 2만여 명에게 1인당 월 100만원(최대 5개월 지급)을 지급하는 한국형 엥떼르미땅을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 100대 과제’이기도 한 한국형 엥떼르미땅을 통해 예술활동을 장려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예산이다. 엥떼르미땅을 실시하고 있는 프랑스 역시 2013년 10억유로(약 1조2,90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민주당이 제시한 안의 경우 연 1,000억원의 범위 안에서 예술인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전체 예술인을 품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참고로 지난해 9월 기준으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 예술인으로 등록된 수는 서울에만 2만4,534명, 경기도 1만2,804명에 이른다.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른 봉준호 감독 역시 긴 가난의 시기를 통과했다. 25살에 내놓은 영화 <지리멸렬>(1994)이 주목받긴 했지만, 돈이 되진 않았기에 결혼식 비디오 촬영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고, 31살에 내놓은 <플란다스의 개>(2000) 역시 작품성은 인정받았지만, 관객수가 10만명에 불과해 가난에서 벗어나긴 힘들었다. 조 감독으로 일하며 2년 가까이 번 돈은 450만원 수준. 외할아버지가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로 유명한 박태원 소설가이며, 아버지가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인 봉상균 한국디자인트렌드학회 이사장이지만, 그렇다고 재정 지원이 무한할 수 없었다. 봉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1995년 결혼해 2003년 <살인의 추억> 개봉까지 굉장히 힘들었다. 대학 동기가 집에 쌀을 갖다줄 정도였다”고 말한 바 있다. 경제난으로 예술을 포기하는 비율은 68.2%(2018년 5,002명 대상으로 조사한 문체부 자료). 그때 포기했다면 아카데미 4관왕의 봉 감독은 없었을지 모른다.

비(非)영어권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감독상, 국제영화상, 각본상 등 4관왕의 쾌거를 이룩한 건 한국영화사를 비롯해 세계영화사에 ‘전무’(全無)한 일이다. 이런 기록이 ‘후무’(後無)한 일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국형 엥떼르미땅의 실험이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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