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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세 글자에…공사중단 고집땐 기회비용만 160조

임성현,최희석 기자
임성현,최희석 기자
입력 : 
2019-01-20 18:26:35
수정 : 
2019-01-20 22: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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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만 덩그러니 `신한울 3·4호기` 경제적 피해는

지역사업 17개 줄줄이 취소
2500억 투자계획 수포로

울진지역 경제 피해액 67조
정부지원금도 年480억 급감

원자력공학과 전공변경 속출
국내 원전산업 뿌리째 `흔들`
◆ 멈춰선 국가프로젝트 ① ◆

사진설명
경북 울진군 북면 덕천리·고목리 일대. 당초 예정대로면 2022~2023년 이곳에는 시설 용량 1.4GW급 원전 2기가 들어선다. 인근에는 가동 중인 한울 원전 1~6기와 준공을 눈앞에 둔 신한울 1·2호기가 있다. 추가로 2기가 건설되면 원전 10기로 국내 최대 원전단지가 됐을 곳이다. 용지 조성이 거의 끝났지만 현재 맨땅만 덩그러니 남은 곳이 바로 신한울 3·4호기 용지다. 2008년 정부가 처음으로 건설 계획을 밝힌 뒤 지역 주민들과 긴 시간 협의 끝에 건설이 확정된 만큼 주민들 기대도 컸다. 하지만 2017년 산업통상자원부의 발전 허가가 내려진 지 불과 석 달 만에 정권이 바뀌면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 그해 12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신한울 3·4호기는 아예 이름이 빠져 버렸다. 원전은 발전 허가 이후 4년 이내에 공사계획 인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2021년 2월까지 착공하지 못하면 정부가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최종 취소 결정을 미루고 있지만 이미 울진군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계획과 함께 추진하기로 한 지역 현안 사업만 17개다. 북면과 죽변의 도로 개설과 도시가스 공급관 설치는 물론 원전 주변지 생태도시, 종합복지마을 조성 등이 예정돼 있었지만 이제는 모두 없던 일이 됐다. 올해부터 원전이 건설될 5년간 총 사업비만 2500억원에 달한다. 지금도 세수가 줄고, 지역 소득이 감소하면서 인구가 줄어드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2016년 말 5만1738명이던 이 지역 인구는 지난해 9월 말에는 5만83명으로 줄었다. 일감이 사라진 곳에 근로자들도 하나둘 떠나면서 지역 상권은 물론 지역경제가 통째로 붕괴하고 있다. 신한울 1·2호기에 하루 평균 근로자 2210명이 투입됐던 것을 감안하면 원전은 사실상 이 지역경제를 떠받치는 기반이다. 실제 이 지역 인구 5만명 중 절반이 넘는 2만8000명이 원전 관련 직업에 종사하고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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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신한울 3·4호기만 믿고 있던 지역경제의 미래마저 사라졌다는 것이다. 원전 가동 기간은 평균 60년. 이 기간 원전 가동으로 지역경제가 누릴 수 있었던 이익이 모두 기회비용으로 남게 됐다. 한국원자력학회에 따르면 신한울 3·4호기 취소로 울진 지역이 입게 될 직접적 피해액만 연간 1조1198억원에 달한다. 당장 입을 건설 피해(50억원)와 함께 운전 기간 발생하는 피해액이 1조660억원이고 사라지는 각종 지원 사업도 488억원이나 됐다. 60년간 총 67조189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경제 효과를 모두 기회비용으로 날려 버린 셈이다. 이에 따른 개인소득 피해도 7조6000억원, 고용 피해는 24만3000명에 달한다. 안춘섭 울진군 원전정책팀장은 "원전과 공생해 온 지역인데 신한울 3·4호기 취소로 일거리가 없어지고 지역경제는 마비된 상황"이라며 "관련 인력이 빠져나가 버리면 가동 중인 원전을 유지하는 데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2028~2029년이 되면 한울 1·2호기가 셧다운에 들어간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현재 150억~200억원 수준인 정부 지원금 중 30%가 사라지게 된다.

당장 신한울 3·4호기 취소로 발생하는 매몰비용만 6000억~7000억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막대한 기회비용까지 감안하면 건설 재개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지역과 원전 업계 주장이다. 탈원전이 정부 정책 기조라고 하더라도 짓고 있던 신한울 3·4호기마저 폐기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이다. 4~5년간 신한울 3·4호기가 건설되면 원전 업계의 '일감절벽'을 막을 수 있는 데다 원전 생태계가 유지되면서 본격적인 탈원전 시대를 대비하는 최소한의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6년 기준 국내 원전 산업 총 매출액은 27조4513억원에 달한다. 한 해 투자액만도 8조원이 넘고 직간접적으로 원전 산업에 종사하는 전체 인력은 3만7232명이다.

실제로 짓던 원전마저 폐쇄하려는 정부의 과격한 탈원전에 국내 원전 산업 기반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올해 KAIST에서 2학년 진학자 중 원자력공학과를 선택한 학생은 700여 명 중 단 4명에 그쳤다. 2016년만 해도 20명이 넘었던 지원자들은 2017년 9명, 지난해 5명으로 매년 줄고 있다. 경희대 원자력공학과에서는 올해 정원 50명 중 1·2학년 17명이 전과를 신청했다. 현재 전국에 원자력학과를 보유한 대학은 서울대, KAIST, 경희대, 한양대, 조선대 등 총 16개다. 2017년 기준 전국 원자력학과 재학생은 총 3095명이고 매년 졸업생 500여 명이 배출돼 왔다.

정용훈 KAIST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탈원전으로 원전 산업에 대한 전망이 나빠지면서 학생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유일 원자력 전문인력 양성 고등학교로 울진에 위치한 원자력마이스터고도 신입생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할 처지다. 한 학년 정원이 80명인 이 학교는 2017년만 해도 경쟁률이 3대1에 달했지만 지난해에는 1대1로 간신히 정원을 채운 실정이다.

김명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정치적 구호에 불과한 탈원전 때문에 산업 붕괴가 현실화하고 있다"며 "경제성을 따지더라도 노후 원전을 줄이고 신한울 3·4호기를 재개하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한국도 10년만 지나면 영국처럼 원전 생태계가 파괴돼 원전 기술도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현재 한국을 제외하면 원자력발전소를 설계·시공·운영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 일본, 중국, 프랑스, 러시아 등에 그쳐 수출 호기를 맞고 있는데 탈원전으로 기회가 박탈돼 버렸다는 것이다.

원전 산업이 사라진 자리를 원전 해체 산업으로 메우자는 정부 발상도 허황된 발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정용훈 교수는 "원전 1기를 60년간 운영할 때 원가는 30조원에 달하고 그중 절반이 지역경제에 기여한다"며 "반면 원전 사후 처리 비용은 60년간 2조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임성현 기자 / 최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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