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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유권 논란만 12년···“언제쯤 볼 수 있을까?”

백경열 기자

12년.

학계에서 “1조원의 가치가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기대를 모았던 국보급 문화재,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하 상주본)이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다. “상주본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하지 않아서다.

지금까지 민사와 형사 재판 2건이 있었지만 각각의 판단이 엇갈리면서 논란의 불씨를 남겼고, 이에 따른 별도의 행정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실제 소장자로 알려진 인물이 최근 1건의 소송을 추가로 제기하면서, 상주본의 소유권을 둘러싼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로 알려진 배익기씨가 2017년 4월10일 공개한 상주본의 모습. 아래쪽이 불에 그을려 훼손된 상태로, 배씨는 2016년 12월~2017년 1월 사이 직접 찍었다고 밝혔다. 배씨가 공개한 사진은 훈민정음 해례본 중 글자를 만든 원리와 기준 등을 밝힌 ‘제자해’(制字解) 부분으로 총 33장 분량 가운데 10장 뒤쪽과 11장 앞쪽의 모습으로 확인됐다.|배익기씨 제공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로 알려진 배익기씨가 2017년 4월10일 공개한 상주본의 모습. 아래쪽이 불에 그을려 훼손된 상태로, 배씨는 2016년 12월~2017년 1월 사이 직접 찍었다고 밝혔다. 배씨가 공개한 사진은 훈민정음 해례본 중 글자를 만든 원리와 기준 등을 밝힌 ‘제자해’(制字解) 부분으로 총 33장 분량 가운데 10장 뒤쪽과 11장 앞쪽의 모습으로 확인됐다.|배익기씨 제공

■2008~2011년, 짐 정리 중에 발견됐다는 ‘국보급’ 상주본

경북 상주에 거주하며 현재 상주본의 실제 소장자로 알려진 고서적 수집가 배익기씨(56)와 상주시는 2008년 7월 상주본의 실물을 공개했다. 배씨는 “집을 수리하기 위해 짐을 정리하던 중 상주본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배씨가 공개한 상주본은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돼 1962년 국보 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과 같은 판본으로 드러났다. 해례본 간송본의 경우 예의(例義)·해례(解例)·정인지 서문 등 세 부분, 총 33장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당시 상주본은 본문 7장과 정인지 서문 1장이 분실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상주본의 학술적 가치가 간송본보다 더 높다는 게 학계의 대체적인 시각이었다. 보존 상태가 좋은 데다, 표제와 주석이 16세기에 새롭게 더해져서다.

학계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상주본은 공개와 함께 험난한 운명을 맞게 된다. 상주 지역에서 고서적 등을 판매하던 조모씨(2012년 사망)는 “배씨가 나에게서 다른 고서를 사면서 상주본을 훔쳐갔다”면서 2008년 12월 민사소송(물품 인도 청구)을 제기했고, 2010년 6월 1심에서 조씨가 승소하게 된다. 이 판결은 대구고법을 거쳐 2011년 5월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2011~2014년, 재판에서 ‘애매한 결론’…갈등 불씨 커져

대구지검 상주지청은 민사 재판부의 판단을 근거로 2011년 9월 배익기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절도)로 구속기소했다. 이후 2012년 2월 1심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인정, 배씨에게 징역 10년의 실형을 선고한다. 배씨는 “허위 사실을 통해 누명을 씌운 것”이라며 반발했지만, 옥살이를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해 9월 대구고법은 공소사실 입증 부족 등을 이유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2014년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되면서 배씨는 혐의를 벗었다.

문제는 민사소송에서 이긴 조씨가 2012년 “상주본을 되찾으면 문화재청에 기증하겠다”고 밝힌 뒤 그해 12월 숨져, 소유권이 국가로 넘어갔다는 점이다. 즉 민사재판 등을 거쳐 국가가 상주본의 법적 소유자가 됐지만, 이를 처음 공개한 배씨가 상주본을 훔쳤다는 혐의도 성립하지 않으면서 논란이 시작된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로 알려진 배익기씨가 2017년 4월10일 공개한 상주본의 모습. 아래쪽이 불에 그을려 훼손된 상태로, 배씨는 2016년 12월~2017년 1월 사이 직접 찍었다고 밝혔다. 배씨가 공개한 사진은 훈민정음 해례본 중 글자를 만든 원리와 기준 등을 밝힌 ‘제자해’(制字解) 부분으로 총 33장 분량 가운데 10장 뒤쪽과 11장 앞쪽의 모습으로 확인됐다.|배익기씨 제공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로 알려진 배익기씨가 2017년 4월10일 공개한 상주본의 모습. 아래쪽이 불에 그을려 훼손된 상태로, 배씨는 2016년 12월~2017년 1월 사이 직접 찍었다고 밝혔다. 배씨가 공개한 사진은 훈민정음 해례본 중 글자를 만든 원리와 기준 등을 밝힌 ‘제자해’(制字解) 부분으로 총 33장 분량 가운데 10장 뒤쪽과 11장 앞쪽의 모습으로 확인됐다.|배익기씨 제공

■2014~2018년, “소장자의 반격”…‘불에 탄 상주본’ 공개

법적 다툼이 진행되면서 상주본은 모습을 감췄다. 배씨는 상주본의 실체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7년 4월10일,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국회의원 재선거(4월12일)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배씨가 선거 이틀 전 ‘히든카드’를 냈다. 상주본을 촬영한 사진을 공개한 것이다.

당시 배씨는 “지난해(2016년) 12월부터 올 1월 사이 직접 찍은 상주본 사진 3장을 공개한다”면서 “일부 불에 탔지만 크게 훼손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이는 2015년 3월26일 상주시 낙동면에 있는 배씨의 집에서 불이 났을 때, 일부 탔던 것으로 알려진 상주본의 모습이 처음 공개된 것이다. 그는 사진을 공개하며, 자신이 상주본을 갖고 있다는 사실과 국회의원 당선 시 실물을 공개할 수 있다는 점을 내비쳤다.

이날 배씨가 공개한 사진은 훈민정음 해례본 중 글자를 만든 원리와 기준 등을 밝힌 ‘제자해’(制字解) 부분으로 총 33장 분량 가운데 10장 뒤쪽과 11장 앞쪽의 모습이었다. 학계에서는 배씨 진술로 미뤄봤을 때 남은 상주본이 25장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했다.

배씨는 2015년 한글날을 앞두고는 “1000억원을 주면 상주본을 내놓겠다”고 언급하는 등 상주본의 소유권과 공개를 두고 문화재청과 맞섰다. 그는 문화재청이 누명을 씌워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2017년 국회의원 낙선 후 문화재청이 강제집행으로 상주본을 회수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별도의 민사소송(청구이의의 소)을 냈다.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확정됐으며, 상주본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이유였다.

지난해 2월 1심 재판부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은 당시 관련 증거 등 공소사실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형사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났을 뿐, 상주본의 소유권을 인정한 판결은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형사 판결에서 무죄는 증거가 없다는 것으로, 공소사실이 없다는 점이 증명됐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배씨는 즉각 항고했고 오는 4일 오후 1시50분 대구지법에서 항소심이 열린다. 법조계에서는 기각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로 알려진 배익기씨.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로 알려진 배익기씨.

■2019년, “민사재판부터가 잘못이었다”…또 다른 소송

얼마 전 배씨는 2011년 민사 판결이 잘못됐다며 당시 증인들을 무더기로 고소했다. 혐의가 입증될 경우 재심이 열리게 돼 법적 소유권자인 국가의 상주본 회수가 불투명하다.

3일 배씨와 법조계의 말을 종합하면, 배씨는 지난달 26일 서울의 ㄱ법무법인을 통해 2010~2012년 상주본의 소유권을 판단한 민사재판과 자신이 절도 혐의로 기소된 1심에서의 핵심 증인 3명을 대구지검에 고소했다. 법정에서 사실과 다른 진술(위증)을 해 배씨에게 불리한 재판이 진행됐다는 혐의를 적용했다.

배씨는 “당시 재판부가 상주본을 조모씨(2012년 사망)의 소유로 판단했는데, 이는 조씨 주변 사람들의 거짓 진술을 근거로 한 것”이라며 “이들의 위증 혐의를 밝히고 재심을 통해 상주본의 법적 소유권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민사소송법 제451조 1항 7호는 ‘증인 등의 거짓 진술이 판결의 증거가 될 때 재심의 사유가 된다’고 정하고 있다. 이번 소송 결과에 따라 상주본의 주인을 가리기 위한 재판이 다시 열릴 수 있게 된 셈이다.

배씨는 그간 “문화재청 관계자들이 골동품 수집상들을 꾀어 내가 상주본을 훔친 것처럼 위증을 하도록 지시했다”면서 “명명백백히 진상을 가려 당시 문화재청 관계자들을 처벌하고 명예가 회복돼야 한다는 생각이 크다”고 밝혀 왔다. 이번 소송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된다.

법적 소유주는 국가이지만, 문화재청은 강제회수 등 실제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무리하게 회수 절차를 밟을 경우 상주본이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국보급 문화재의 행방도 모른 채 배씨에게 끌려간다”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지만, 상주본의 정확한 행방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 문화재청의 고민이 깊어가는 모양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번 증인 고소 건과 앞으로의 행정소송 결과 등을 살펴본 뒤 대응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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