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 여성의 백인 비하, 인종차별인가 미러링인가
ㆍ“가해자 방식 모방했다”는 입장 수용
트위터에 백인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사라 정의 〈뉴욕타임스〉 입사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트위터에 공식 입장문을 올려 정에 대한 채용을 철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가 최근 채용하기로 한 기자의 ‘인종차별적’ 트위터 글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유명인이 과거에 남긴 트위터 글로 구설에 오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발언의 주체가 젊은 아시아계 여성이고 비하의 대상이 백인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사회적 소수자였던 그가 자신에게 쏟아진 인종차별에 ‘미러링(특정 혐오행위에 경각심을 일깨우려고 피해자들이 자신들이 당하는 방식 그대로 가해자에게 돌려주는 행위)’으로 대응한 것이라며 채용을 철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 편집국은 지난 1일(현지시간) 통신기술분야 수석기자로 사라 정(30)이 합류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1988년 한국에서 태어난 그는 3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다. 이후 주요 인터넷 관련 판례들을 심층 분석한 기사들을 통해 기술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기자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포브스〉가 선정한 언론분야 ‘가장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으로도 선정됐다. 정은 최근까지 온라인 기술전문매체 버지에서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정의 채용 소식이 알려진 직후, 평소 온라인 상에서 정과 논쟁해 왔던 일부 누리꾼들은 그의 ‘과거 행적 파헤치기’에 나섰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그가 2013년부터 2015년 사이에 썼던 트위터 글들이다. 백인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표현이 대다수다. 이러한 발언들은 정이 ‘백인을 차별한’ 실체적 증거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유통되기 시작했다.
특히 정에 대한 초기 비판여론을 주도한 것은 게이트웨이펀디트, 브레이트바트, 데일리콜러 등과 같은 극우성향의 인터넷 매체들이었다. 선동적 음모론으로 유명한 인터넷매체 인포워즈(Inforwars)는 “정은 그의 인종차별적 트위터에도 불구하고 채용된 것이 아니다. 그러한 트위터를 올렸기 때문에 채용된 것”이라며 정과 〈뉴욕타임스〉를 동시에 비난했다. 정에 대한 분노 여론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정 역시 3일 별도의 성명을 내고 “풍자를 의도한 것이긴 했지만 가해자의 언어를 따라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며 “내 발언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안겨줬는지 이해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은 영화나 게임을 페미니즘적으로 비평한 기사를 쓴 뒤 일부 커뮤니티 유저들로부터 집단적인 인신공격을 받은 경험이 있다. 그의 저서 〈쓰레기 인터넷(The Internet of Garbage)〉에서도 온라인 괴롭힘의 구조와 패턴을 분석한 내용이 비중 있게 다뤄진다.
백인도 차별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과거 트위터에 남긴 부적절한 언급으로 곤욕을 치른 유명인은 정뿐만이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월 백인 여성 기자 퀸 노튼의 과거 트위터 글이 인종차별·성소수자 비하 논란에 휩싸이자 채 하루도 안돼 사실상 그를 해고했다.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로 유명한 제임스 건 감독도 최근 2008년과 2009년 트위터에서 어린이를 성적 대상으로 삼거나 강간을 소재로 농담을 한 사실이 논란이 되면서 지난 7월 디즈니로부터 해고됐다.
정의 사례가 특이한 점은 혐오발언의 대상이 인종적 주류인 백인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은 해당 발언이 ‘미러링’이었다고 해명한 상태이지만, 백인도 인종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시각이 엇갈린다.
비판하는 측에서는 인종을 이유로 특정인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을 ‘인종차별’로 규정한다. 백인을 대상으로 한 발언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특히 이들은 노튼을 사례로 들면서 〈뉴욕타임스〉의 대처가 이중적이라고 말한다. 폭스뉴스 칼럼니스트 스티븐 밀러가 “사라 정의 멍청하고 오래된 트위터에는 관심없다. 하지만 이런 기준을 세운 것은 타임스 자신들”이라고 말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같은 발언을 백인이 아니라 유대인, 흑인에게 했다면 즉각 해고됐을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반면 놀란 L 카브레라 애리조나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인종차별은 편견이나 편협함의 동의어가 아니라 인종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에 관한 개념”이라며 “백인을 억압할 수 있는 사회 구조는 결코 없었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정이 백인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이는 지난 500여년간 이어진 인종차별의 역사에 의도적으로 무지했을 때만 가능하다는 게 카브레라 교수의 설명이다.
<심윤지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신문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꼬다리] 외할머니의 YTN
- [박수현의 바닷속 풍경](47) 필리핀 세부섬 모알보알-바다는 푸르다? 오묘하고 다양하다
- 이스라엘과 이란, ‘그림자 전쟁’은 끝났다
- “뻔히 보고도 못 잡는다”…애꿎은 팬들만 잡는 암표와의 전쟁
- [시네프리뷰] 3D·CG 기술로 살아 움직이는 동물 인형들
- [우정 이야기] ‘어린이날 선물’ 핑크퐁·아기상어 우표 나온다
- [시사 2판4판]점점 커지는 채 상병 의혹
- “아프지 마세요” 응급실 사라져 울상 짓는 ‘웅상’
- 알리부터 철강·전기차까지···중국 재고떨이에 몸살
- “채 상병·김건희 특검, 여당이 먼저 해결책 내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