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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불매' 내걸며 개인 공격···"정당한 혐오는 없어요"

심윤지·박채영 기자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에서 촉발된 ‘일본 불매운동’이 확산하면서 타인에 대한 모욕과 혐오로도 번지고 있다. 불매운동에 동참하지 않은 이들을 ‘친일파’로 규정해 공격·비난하는 사례가 늘어난다. 일각에서는 반일감정이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로 이어진다. 일본에 살거나 일본인 가족을 뒀다는 이유로도 혐오 대상이 된다.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희망마트(대표 단길수)진열대에  일본산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희망마트(대표 단길수)진열대에 일본산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일본에서 7년째 거주 중인 양모씨(26)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한국인이 왜 일본에 사느냐”며 비난하는 메시지를 받았다. 어떤 사람은 “집주소를 알아내 죽이겠다”고 했다. 그는 “아베 정부의 대응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불매운동에 동참하지 않는 개인에 대한 공격은 비난 대상을 잘못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음악가 ㄱ씨는 7월 말 예정된 일본 공연 때문에 고민이 깊다. 평소 친분이 있던 공연기획자가 6개월 전 일본 돗토리현이 주최하는 한·일 우호증진 행사 공연을 제안했다. 주최 측은 “미래세대가 이끌어갈 한·일관계가 중요하다”는 취지로 ㄱ씨의 중학생 딸도 함께 초청했다. 하지만 딸이 일본에 간다는 소식을 들은 또래 친구들이 “지금 일본에 가면 친일파”라며 만류했다고 한다. ㄱ씨는 “며칠 속앓이를 하던 딸이 ‘일본에 가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고 전했다.

한·일 부부의 일상 영상을 올리는 한 유튜버는 지난 12일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심한 욕설과 모욕, 성희롱성 발언까지 듣고 있다”며 자제를 당부했다. 지난 18일 ‘교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쿄애니) 방화 사건을 전하는 기사에는 “쿄애니를 걱정할 시간에 불매운동에나 동참해라” “애니메이션에 전범기를 넣는 기업에 무슨 추모냐”는 댓글이 달렸다.

일본산 자동차 수리를 거부하겠다고 한 카센터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보배드림 갈무리

일본산 자동차 수리를 거부하겠다고 한 카센터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보배드림 갈무리

불매운동 동참을 촉구하는 사람들은 압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 고등학생(16)은 얼마 전부터 일본 여행 인증사진을 올린 사람들을 팔로해 압박을 가하는 ‘박제 계정’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이 와중에도 일본 관광지에서 웃으며 사진을 찍고 ‘#매국노아님’이라는 해시태그를 다는 사람들을 보니 화가 났다”며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여행을 갈 순 있지만 이를 SNS에 올리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했다.

여러 시민들은 불매운동에 동참하지 않는 이들을 친일파로 몰거나 일본인이나 일본과 관련 있는 이들을 비난하는 기류를 우려한다. ㄱ씨는 “일본 공연을 기획한 지인도 현 아베 정권의 오판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일본인 친구”라며 “제가 만난 좋은 친구들을 떠올리면 ‘일본인들은 모두 다 나쁜 사람’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대학생 김모씨(23)도 “반일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정의구현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며 “이번 사안이 재한 일본인에 대한 오프라인 공격으로 이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회 캠페인으로서의 불매운동과 개인에 대한 공격을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본 제품을 쓰는 개인에 대한 비판은 넓은 의미의 정치적 의견으로도 볼 수 있다”면서도 “타인에 대한 모욕과 혐오로까지 번지면 불매운동의 당초 목적을 훼손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도 “불매운동이 타인의 인권을 침해·제한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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