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총리 조사 "공동체가 풀어야 할 숙제 아직 많이 남아있다"
"아물지 않은 상처"…때늦은 5·18 대독사과, 후대에 과제 남겨
국가장 논란 속 "전두환과는 달랐다" 인식도…全 국가장 방지 제도화 움직임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이 30일 영면에 들었지만, 그의 공과(功過)에 대한 우리 사회의 역사적 평가는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군사정권과 문민정부를 이은 과도기 지도자로서 양면성이 뚜렷했던 만큼 고인이 떠난 자리를 되짚는 국민 정서도 장례가 치러지는 닷새 내내 복잡하게 뒤엉켰다.

노 전 대통령이 끝내 5·18에 대한 사죄 없이 지난 26일 생을 마감했을 때 국내 언론이 헤드라인에 '서거', '타계', '별세', '사망' 등 각기 다른 표현을 사용한 것은 세간의 엇갈린 평가를 단적으로 드러낸 대목이다.

이튿날 유족이 "과오가 있었다면 너그럽게 용서해주기를 바란다"는 노 전 대통령의 유언을 전하며 사후 '대독 사과'를 했을 때에도 '늦었지만 잘했다'는 환영과 '미완의 사과에 그쳤다'는 비판이 동시에 나오기도 했다.

'빛과 그림자' 뚜렷한 노태우, 역사적 평가도 '현재진행형'
민주화 세력의 본산을 자임해온 여권의 셈법도 장례 기간 내내 복잡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장을 결정하고 "과오가 적지 않지만, 성과도 있었다"고 평가, 고인을 예우하면서도 빈소를 직접 찾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 예우와 진보 진영의 반대 사이에서 절충한 것으로 보인다.

김부겸 국무총리도 30일 영결식 조사에서 "대통령 재임 동안 많은 공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애도만 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공동체가 풀어야 할 숙제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의 영결식은 고인을 애도하는 자리이자 새로운 역사, 진실의 역사, 화해와 통합의 역사로 가는 성찰의 자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당 지도부와 이재명 대선 후보는 공과를 균형 있게 봐야 한다는 기류 속에 조문 행렬에 동참했지만, 이 후보는 "빛의 크기가 그늘을 덮지는 못할 것"이라며 조문 후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고 송영길 대표는 지방 일정을 이유로 영결식에 불참했다.

본격적인 대선 본선 레이스를 앞두고 중도층 확장과 전통적 지지층 결집 두 가지를 다 놓칠 수 없는 고민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박병석 국회의장도 "과오가 있고 빛과 어둠이 있다"며 "아물지 않은 상처도 있고, 그러나 또 대한민국을 국제무대로 넓혔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성과도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정부의 국가장 결정도 사회적 논쟁을 불러왔다.

참여연대는 "국가에 반역하고 시민을 학살한 사실은 덮을 수 없다"는 입장을 냈고, 민주노총은 "사후의 세계에 가서라도 죗값을 단단히 치르라"고 저주했다.

반면,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상황실장이었던 박남선 씨는 빈소에서 "잘못을 통렬히 반성한다면 국가장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여야 정치권은 대체로 국가장에 찬성했으나, 1987년 6월 항쟁 당시 학생운동 선봉에 섰던 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역사적 평가는 냉정해야 한다"며 반대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 듯 정부는 코로나19 방역 등의 이유를 내세워 분향소를 따로 설치하지 않았다.

결국 형식은 국가장이되 실질은 가족장이나 다름없는 조촐한 예식이 이어졌다.

'빛과 그림자' 뚜렷한 노태우, 역사적 평가도 '현재진행형'
노 전 대통령 별세가 나중에 전두환 전 대통령 장례를 어떤 식으로 치를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더 뚜렷하게 도출되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에 대한 국가장 등 예우는 불가하다는 것이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라디오에서 이번 국가장 취지를 설명하며, "전 전 대통령의 경우 국가장이나 국립묘지 안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송 대표도 전 전 대통령을 가리켜 "이런 사람은 국가장(葬)을 치를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할 생각"이라며 '전두환 국가장 금지법' 추진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민주당 조오섭 의원이 대표 발의해 국회 행안위에 계류 중인 이른바 '전두환 국가장 배제법안'이 다시 조명을 받기도 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노 전 대통령은 공과가 분명해 장례도 어정쩡하게 치러진 측면이 있다"며 "전 전 대통령은 5·18 학살의 주범으로 사망 시 전혀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