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조 마타렐라(오른쪽) 이탈리아 대통령이 29일(현지 시각) 로마 중심가에 위치한 퀴리날레 대통령궁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갖기 전 마스크를 쓰고 있다. 유럽 순방길에 오른 바이든 대통령은 로마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와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최되는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등에 잇따라 참석한다. /AP 연합뉴스

지지율 하락으로 고심하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국내외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28일(현지 시각) 5박7일간의 유럽 순방에 나섰다. 그는 주요 20국(G20) 정상회의 및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참석을 위해 유럽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 최우선 어젠다인 사회복지 예산안 규모를 당초보다 절반으로 줄인 절충안을 발표했다. 이 법안은 당초 3조5000억달러(약 4096조원)로 제시됐었지만, 공화당 반대와 민주당 내부 갈등으로 계속 통과가 미뤄지자 규모를 절반 수준(1조7500억달러)으로 축소한 것이다. 그러나 당장 민주당 내 급진파가 불만을 표시해 법안이 통과될지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전 하원 민주당 의원들과 모임에서 바이든 행정부 핵심 복지·환경 현안을 담은 사회 복지 예산안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을 소개하면서 “(예산안의 운명이) 다음 주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하원과 상원에서의 다수당 (유지), 그리고 내 대통령직 수행이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순방 당일까지 법안 처리를 강조한 것은 계속해서 떨어지는 지지율을 의식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최근 여론 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30% 후반대까지 떨어졌다. 코로나 장기화 및 ‘2%대’ 성장률 쇼크 등 악재가 겹친 데 이어 주요 성과를 찾기 힘들다는 비판이 커지자, 핵심 법안 내용을 크게 양보하면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미 언론 액시오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순방을 가기 전) 큰 도박을 벌였다”고 평가했다.

이날 백악관 발표에 따르면 수정 법안엔 아동 보육, 유치원 교육(4000억달러), 자녀·근로 세액공제(2000억달러) 등이 포함됐다. 기후변화 예산 5550억달러가 그대로 유지됐고, 최근 부동산 폭등을 완화하기 위해 100만 채의 주택을 짓는 방안(1500억달러)도 포함됐다. 반면 12주 유급 가족 휴가, 처방약 가격 인하, 커뮤니티 칼리지(2년제 공립대학) 무상 교육 등은 백지화됐다.

바이든 대통령 순방 및 미국 정치 일정

워싱턴 정가는 이번 예산안이 계속 지연될 경우 바이든 순방 기간 치러지는 미 버지니아주(州) 주지사 선거(다음 달 2일)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지 언론 매체들은 이번 주지사 선거를 내년 11월 중간선거 결과를 가늠할 수 있는 ‘중간 평가’가 될 것이라고 본다. 그간 민주당 후보 테리 매컬리프가 공화당 소속 글렌 영킨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왔다. 그러나 폭스뉴스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영킨 후보가 매컬리프 후보를 8%p 앞서는 등 초접전을 벌이거나 영킨 후보가 우세하다는 결과도 나오고 있다.

지난 8월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했던 연합군 철수 당시 아무런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해 비판받고 있는 상황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와 COP26도 그에게는 큰 부담이다. G20 정상회의와 COP26에 중·러가 불참하기로 하면서 미·중, 미·러 대면 정상회담이 무산된 데다가, 미국이 핵심 의제로 밀어붙이는 기후 변화 논의 동력도 힘이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순방 기간 미국·영국·호주 간 안보 동맹인 ‘오커스(AUKUS)’ 출범으로 촉발된 프랑스와의 갈등을 진정시켜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이란이 최근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회담에 복귀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회담 당사국들 중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국가들과 구체적인 사안도 조율해야 한다.

한편 바티칸 교황청은 29일 예정된 프란치스코 교황과 바이든 대통령의 면담 생중계를 돌연 취소했다고 이날 AP통신이 보도했다. 당초 교황청은 교황과 바이든 대통령이 사적인 대화를 시작하기 전 인사한 뒤 앉는 모습을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이를 비공개로 전환하고 편집한 영상을 언론에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교황청의 결정을 두고 바이든 대통령이 그간 ‘낙태 지지’ 의견 표명을 해온 것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낙태를 ‘살인’이라고 하는 등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이후 미국의 두 번째 가톨릭 신자 대통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