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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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 김태수 1963년 서울 출생. 초등학교 4학년 때 경북 김천으로 내려가 과수원집 큰아들로 ‘곱게’ 성장하며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서울로 올라와 대학을 졸업한 뒤 신문사에 들어갔다. 16년 간의 일간지 기자 생활 중 거의 대부분을 문화부에서 지냈다. 출판 문학 미술 영화 방송 연극 등을 담당하는 동안 바지런하고, 글 잘 쓰고, 인성 좋은 기자로 소문나면서 문화판의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탁월한 재능에다 심심찮게 맞닥뜨리는 단행본 작업 제의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책 한 권 내지 못한 것은 결벽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그의 ‘겸손함’ 때문이었다. 그러다 3년 전, 우연히 접한 옛날 신문광고에 제대로 걸려들고 말았다. 처음엔 기획 연재꺼리라도 찾아볼 요량으로 뒤지던 옛날 신문 한구석에 그의 발목을 낚아챈 늪이 있었으니 재미있고 기묘하고, 우울하고 애틋한 모습으로 지나간 한 시대를 이야기하는 광고의 세계였다. 이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옛날 신문광고를 모으고 각각의 테마에 맞는 잡지와 수백 권의 관련서적, 논문을 검토하고, 1천 매가 넘는 원고를 생짜로 썼다 고치고 다시 쓰는 혹독한 작업이 이어졌다. 무려 3년 동안이나 과거의 세계를 헤매다 돌아온 지금, 그는 별로 피로해하지 않는 눈치다. 코앞의 현실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는 미처 획득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 새로운 세상을 만났기 때문이란다. 이 책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는 그가 행복한 과거로의 여행에서 얻어온 가장 소중한 성과물이다.
목차
- 책 머리에
기생|개쌍놈도 데리고 노는 민중화의 세상이라
고무신|강철은 부서질지언정 별표 고무는 찢어지지 아니한다
성병약|화류병은 문명의 병이다
영어|입신의 기초이며 출세의 자본이라
아지노모도|끄내라, 끄내! 밥상 드러온다
과자|포켓트에 너흘 수 있는 호화로운 식탁
산아제한|'가정화합의 벗' 삭구를 아시나요?
전쟁|캬라멜도 싸우고 있다
창씨개명|나의 조선 이름은 촌티가 나서...
영화|촤뿌린씨의 눈물과 웃음, 거리의 등불은 빛난다
자동차|제갈량의 목우유마냐 옥황상제의 용마냐
라디오|문명이 운다 조선의 라듸오!
위생|건전하고 매력 있는 살바탕을 맨드러야
박가분|부인 화장계의 패왕
백화점|백화점 승강긔 바람에 억개가 읏슥하다
술|맥주는, 가로대 자양품이라
커피|양탕국이냐, 독아편이냐
손기정|축! 마라손 왕 손남 양군 만세
전당포|훈장 3원, 요강 50전
바리캉|경제계의 대복음, 이발계의 혁명
양장|유방을 해방하자
포르노그래피|밤의 쾌락을 맛볼랴는 남녀에게 권함
참고문헌
책 속으로
‘민중화의 시대다. 학문도 민중화, 정치도 민중화, 모두가 다 민중화하는 이 시대니 어찌 기생이라고 민중화가 아니되랴. 옛날은 관기라 하야 군수 사또가 아니면 데리고 놀지 못하든 기생이 일조에 양반정치가 끊어지고 섬 건너 양반정치가 된 뒤로 아주 철저히 민중화가 되어 인제는 개쌍놈의 아들이라도 황금만 가젓으면 일류 명기를 하루밤에 다 데리고 놀 수 잇게 되었다.’ - 본문 13쪽 변화의 소용돌이가 단발령과 창씨개명에 이르자 조선인의 저항은 더욱 격렬해진다. 그러나 ‘내 목을 벨지언정 내 머리카락을 자를 수는 없다’는 비장한 외침은 ‘경제계의 대복음, 이발계의 혁명’을 운운하는 바리캉 광고에 파묻힌다. “성까지 왜놈을 따르지 않으면 못 사는 세상에서는 살기 싫다.”는 결연한 의지도 소용이 없었다.
출판사 서평
개쌍놈도 데리고 노는 민중화의 세상, 강철 고무신 거리를 활보하다. 지금 우리에게 매일 아침 배달되는 신문처럼, 근대의 여명기 독자들에게도 신문 한 부씩이 매일 아침 대문 앞으로 배달되었다. 그 신문 한켠에서 강철 고무신이 활보하고, 맥주는 ‘자양품’으로 커피는 ‘양탕국’이 되어 갈증 난 근대인을 유혹했다. 한복 저고리를 개량해 ‘유방을 해방하자’던 여성들은 깊숙이 숨겨둔 발목마저 드러내 사람들을 아연케 했다. 만화방창한 시절 이 땅 뭍 남성들은 ‘꽃보다 다리 구경’이라나 어쨌다나. ‘섬나라 정치가 들어온 탓인지’ 음란해진 사회분위기를 걱정하는 가운데도 신문 1면에는 기생들의 근하신년 광고가 들어선다. 그 한 모퉁이에는 ‘밤의 쾌락을 맛볼랴는’ 이들에게 권하는 이상야릇한 포르노그래피 책 광고가 자리를 잡았다. 외국어 특히 영어는 ‘입신의 기초, 출세의 자본’으로 통용되었고 그때 이미 세계화, 스피드 시대를 견인했다. 신문광고로 본 한반도 근대의 풍경이다. 이 책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는 신문지면의 부속품으로 치부되던 신문광고를 파헤쳐 근대인들이 욕망하던 것, 그리고 그들에게 강요됐던 모든 것들을 낚아챈다. 광고는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단발령, 창씨개명, 아관파천, 태평양전쟁과 같은 근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근대의 일상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근대에 드리워진 먹구름을 걷어내다 그러나 근대로의 시간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풀어야만 하는 오해가 하나 있다. 한반도를 방문했던 소위 ‘문명국’ 인사들이 남긴 사진들에서 받는 깊은 인상이 그것이다. 머리에 물동이를 지고 짧은 저고리 사이로 유방을 드러낸 여인(346쪽), 지게 가득 짚신을 지고 가는 노인(35쪽), 별 볼일 없는 장터를 가득 메운 사람들(358쪽). 초라하고 생경한 그 모습은 우리의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중압감 때문이라고 막연하게 추측할 따름이다. 혹은 원시 부족을 보는 듯한 외국인의 시선에 쉽게 동화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우리에게는 근대에 대한 철저한 무지만이 남았다. 도도히 흐르던 역사의 한 줄기는 이렇듯 일제 강점기라는 습지대를 만나 땅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 책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는 날벼락처럼 떨어진 ‘근대’와 ‘식민 지배’라는 현실에서도 치열하게 살았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모습을 복원해 망각의 습지대를 메운다. 역사를 정색하고 얘기하면 잘 안 듣잖아. 광고로 그 시대를 얘기해 보면 어떨까? 흔히들 광고를 ‘산업사회의 꽃’이라고 한다. 산업사회의 기점을 근대라 한다면 그 시절의 광고는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역사책이다. 이 책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는 수백 컷의 신문광고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이 땅 한반도의 근대 풍경을 생생하게 재현해낸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때, 신문은 ‘캬라멜도 싸우고 있다’는 광고를 내보낸다. 그러면서 총후(후방)를 강화하기 위해 영양이 풍부한 과자를 섭취하라고 떠들어댄다. 한편 병참기지 조선에서 군수물자인 병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일제는 출산을 장려한다.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반 가정에서는 ‘부인네 일생의 정말 행복은 어떠한 것이라고 생각들 하십니까’라고 광고한 아들 낳는 효험이 있는 ‘부인병 약’에 귀를 기울인다. 단발령은 신문광고에 바리캉과 이발소, 사진관을 불러들이기도 했다. ‘비싼 값 주고서 옷감을 끊는 것보다는 덕국 세창물감 가지고 입던 의복을 다시 물들여 입는 것이 크게 경제되오이다’라는 염색약 광고는 더 이상 ‘백의민족’일 수 없는 현실을 차라리 경쾌하게 그려낸다. 신문광고는 민족주의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손기정의 베를린 올림픽 우승을 전후해 등장한 각종 광고들이다. 신문 전면에 마라톤 영웅 ‘손기정?남승룡 양군 만세’를 외치며 제품을 광고했고, 제약회사 평화당 주식회사는 자사의 ‘백보환’이 마라톤 우승의 원천이라고 광고하기도 했다. 업체들은 툭하면 반일의식이 투철했던 황손 ‘이강 전하가 손수 쓰시던’이란 카피를 들이댔다. 동아소주는 ‘백열적 대호평으로 일취월진, 국산 원료의 이용과 외래품의 구축함을 일대 사명으로’ 삼는다고 주장했다. ‘동양목’은 근사한 붓글씨로 ‘우리 손으로 맨든 2천만 민족 옷감’을 광고했다. 친일파 박흥식조차 ‘화신의 성패는 민족적 명예소관’이라며 조선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광고를 내 화신백화점을 많이 애용해줄 것을 당부했다.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떠들썩하고 활기 넘치는 근대의 저잣거리에도 하루의 양식과 문명의 이기를 얻으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신문광고는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 인간 내면의 원초적 욕구를 자극했다. 이 책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는 활어처럼 꿈틀대는 근대인의 욕망을 잡아채 날것 그대로 우리 눈앞에 선보인다. 한 줄의 광고카피는 그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욕망했는지를 명쾌하게 보여준다. 게다가 당시의 광고카피라는 것이 요즈음 것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명구들이다. 과자를 ‘포켓트에 너흘 수 있는 호화로운 식탁’으로, 삭구(콘돔)를 ‘가정 화합의 벗’으로 칭하는 센스. 산천초목이 어우러진 동양화 분위기를 연출해낸 화장품 광고의 뛰어난 미감은 또 어떠한가? 동시에 광고는 당대의 환상을 실어 나른다. 극장은 ‘관내에는 끽다실 매품부 끽연실 화장실 운동장을 설치하고 한난은 난로와 선풍기를 갖춰 조화케 하여 관객을 맞는다’고 자랑하였고, 자동차는 ‘암흑세계에서 광명세계에!’로의 진입을 선언한다. 초콜릿은 ‘모단적 과자! 첨단을 걷는 과자’를 내세우며 소비자의 허영심을 부추긴다. 이 책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는 근대에 대한 우리의 환상과 절망에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 신문광고 그 자체가 보여주는 시대의 풍경에 주목한다. 광고가 포착해낸 혹은 광고가 이끌고 간 근대의 순간들을 접한 저자가 광고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독자에 대한 최선의 배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광고는 그 자체로 우울하고 서글프고 참혹한 시대상과 함께 근대인들에게 필요했던 것, 근대인들이 욕망했던 것, 근대인들을 유혹했던 것, 근대인들에게 강요됐던 것을 골고루 보여주고’ 있었다는 저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 책은 이 땅 한반도 근대의 한 부분을 메우기에 충분하다.
기본정보
ISBN | 9788991508057 |
---|---|
발행(출시)일자 | 2005년 06월 17일 |
쪽수 | 391쪽 |
크기 |
153 * 224
mm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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