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숨겨진 왕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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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에 살지 않은 조선의 왕족은 왕가에 살았다. 왕가는 왕이 살던 옛집인 잠저, 왕의 사친을 모시는 사당, 출가한 왕자·공주·옹주의 집 모두를 아우르는 말로써, 조선의 왕족이 일생 동안 살았던 곳인 왕가를 알면 조선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책은 세월과 함께 변모한 왕가의 흔적을 더듬어 봄으로써, 그 시절의 역사와 흥미로운 사연을 펼쳐낸다.
작가정보
저자 이순자는 1953년에 태어나 서울 사대문 안에서 초 ㆍ 중 ㆍ 고등학교를 다녔고, 청파동에서 대학을 다녔다. 그러다 보니 추억거리 대부분이 서울 안에 있다. 가끔 추억을 찾아 서울의 거리를 헤매다가 차츰 주변 문화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때부터 박물관 등에서 하는 교육을 받았고, 서울시문화관광해설사 ㆍ 여성문화유산해설사 ㆍ 과천문화지킴이로 활동하게 되었다. 1975년 숙명여자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하여 6년간 경일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결혼한 후 교사 생활을 그만두고, 아이들이 성장한 후 대구한의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에 다녔다.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뒤늦게 역사 공부를 시작했고, 현재 서울시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 중이다.서울시의 문화재를 해설하기 시작하면서 ‘궁(宮)’이라는 이름의 문화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궁궐’과는 다른 ‘궁’의 이야기에 호기심이 발동해 조선 시대 한양에 있던 ‘궁’ ‘왕가’ ‘궁집’들을 찾아다녔다.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진 ‘왕가’들의 잔재를 모아 모자이크를 맞추듯 스토리를 이어가면서 재미를 느끼고 있다.
사진 이순자
목차
- 머리말
책머리에
제1장 왕이 살다
1 영희전, 세조의 잠저
왕위를 찬탈한 세조
세조, 문수보살을 만나다
의숙공주와 음나무의 인연
여섯 왕의 어진을 모시다
영희전을 그리다
2 이현궁, 광해군의 잠저
가까스로 왕위에 오른 광해군
공빈 김씨를 모신 봉자전
계운궁, 숙빈궁, 장용영으로 사용된 이현궁터
이현궁의 은행나무
3 어의궁, 인조와 효종의 잠저
효종이 태어난 상어의궁
용흥궁으로 불렸던 하어의궁
가례장이 된 하어의궁 ㆍ 51
《계곡선생집》에 나타난 하어의궁
인조반정이 일어난 어의궁 ㆍ 55
4 창의궁, 영조의 잠저
화려했던 숙휘공주의 궁
창의궁과 양성헌
영조의 아들, 효장세자의 효장묘
사도세자의 아들, 의소세손의 의소묘
정조의 아들, 문효세자의 문희묘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의 문호묘
동양척식주식회사 사택
역사의 산 증인, 통의동 백송
창의궁 가는 길
5 운현궁, 고종의 잠저
가야사를 불사르고 이장한 남연군묘
명복, 익종의 양자가 되어 왕위에 오르다
작은 궁궐, 운현궁
자영의 꿈에 나타난 인현왕후
팔려나간 운현궁
제2장 왕을 낳은 부모가 살다
1 도정궁, 덕흥대원군의 궁이자 선조의 잠저
중종의 막내아들 덕흥군
창빈 안씨의 음덕을 받고 태어난 하성군
역모로 죽은 이하전
운경기념관과 경원당
긍구당과 담연정을 거닐다
2 누동궁, 전계대원군의 궁
사도세자의 후궁, 양제 임씨
역모와 순교 속에서 살아남은 사도세자의 후손
강화도령 원범, 왕이 되다
전계군을 전계대원군으로 추봉하다
누동궁에 들어선 한옥들
3 경모궁, 사도세자의 사당
창경궁의 정원, 함춘원
뒤주 속에서 8일 만에 죽은 사도세자
정조, 아버지 묘를 천장하다
정조의 수원 화성 행차
함춘원 마두봉 언덕에 세워진 대한의원
내신문과 삼계만 남은 경모궁터
4 칠궁, 숙빈 최씨의 사당과 정빈 이씨의 사당
칠궁의 주인들
어머니의 은혜를 온전히 보존하는 육상궁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 소령원
죽어서도 시어머니를 모시는 정빈 이씨
김신조 사건과 칠궁
5 저경궁, 인빈 김씨의 사당
서모의 은혜를 잊지 않다
인빈 김씨의 사당, 저경궁
인빈 김씨의 묘, 순강원
송현 언덕의 달성위궁
조선은행이 된 저경궁
6 대빈궁, 희빈 장씨의 사당
숙종의 여인들
천민에서 왕비로
빈어가 후비의 자리에 오를 수 없게 하라
268년 만에 숙종 곁으로 가다
경종의 사모곡
대빈묘와 대빈궁으로 남다
7 선희궁, 영빈 이씨의 사당
아들을 사지로 내몬 영빈 이씨
의열묘에서 수경원으로
의열묘에서 선희궁으로
세심대와 감류천
선희궁터에 들어선 국립서울농ㆍ맹학교
8 경우궁, 수빈 박씨의 사당
내가 죽은 뒤에는 행록을 짓지 말라
수빈 박씨묘 휘경원과 사도세자묘 영우원
경사스러움을 돕는 사당
경우궁으로 피신한 고종
경우궁터에 세워진 학교
9 덕안궁, 순헌황귀비 엄씨의 사당
명례방의 명례궁
정릉동의 명례궁
시위상궁, 황귀비가 되다
비운의 황태자, 영친왕
경성부민관에서 서울시의회 건물까지
제3장 왕자와 공주가 살다
1 자수궁, 무안대군의 궁
장인 때문에 세자가 되지 못한 무안대군
후궁들이 모여 살다
명나라 궁녀, 굴씨가 살다
북학과 병원을 세우다
자수궁을 찾아서
2 안국동별궁, 영응대군의 궁
세종, 영응대군 집에서 숨을 거두다
왕의 자손이 사는 집
정명공주가에서 연령군가로
순종의 가례를 위한 별궁
궁중 나인들의 거처에서 풍문여고로
4 순화궁, 길안현주의 궁
구수영과 길안현주
인헌왕후 탄생지
헌종이 사랑한 여인, 순화궁
태화관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다
태화빌딩과 하나로빌딩
5 용동궁, 순회세자의 궁
공회빈 윤씨의 시신이 사라지다
박동궁이 되다
교육을 통한 부국강병, 숙명여학교
최승희의 ‘숙명여자전문학교 설립 모금 운동’
묄렌도르프가 본 용동궁
6 창성궁, 화유옹주의 궁
영조와 일곱 옹주
화유옹주와 창성위 황인점
엄황귀비, 진명여학교를 설립하다
7 죽동궁, 명온공주의 궁
궁궐에서 쫓겨난 단경왕후
죽도를 들고 춤을 추다
죽어서도 함께였던 네 남매
매란여사 명온공주
죽동궁 폭탄 테러 사건
8 계동궁, 남연군의 종가
명당 중의 명당
남연군의 종가를 이어가다
3일 천하로 끝난 갑신정변
계동궁 연못, 번댕이
9 사동궁, 의친왕의 궁
완화군 사망과 독살설
범숙의궁에서 태어난 의친왕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의친왕가
사동궁 회화나무
10 수진궁, 왕자와 공주를 모신 사당
평원대군, 제안대군, 영창대군으로 이어지다
3세에 죽은 원손 인성대군
용성대군, 의창군과 낙선군의 신위를 모시다
숙신공주와 명선공주, 명혜공주
외로운 혼백의 안식처였던 수진궁
궁 주소
주註
사진 출처
조선 왕조 가계도
찾아보기
책 속으로
영희전(永禧殿)은 한성부 남부 훈도방에 있던 궁으로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에 살았던 곳이다. 세조는 세종과 소헌왕후의 둘째 아들로 1428년 윤번의 딸과 혼인하면서 이곳으로 나와서 살았다. 그리고 의경세자와 해양대군(예종)과 의숙공주를 낳았다. 그 후 왕위를 찬탈한 세조가 가족과 함께 경복궁으로 들어가면서, 왕이 살던 이 집은 세조의 잠저로 불렸다. 영희전은 혼인한 의숙공주와 정현조에게 내려주면서 의숙공주가(家)가 되었고, 광해군 이후에는 사당이나 왕의 어진을 모신 곳이 되었다.
-《제1장 왕이 살다 ‘영희전’》 중에서 p. 20
이현궁(梨峴宮)은 한성부 동부 연화방에 있던 광해군의 잠저로, 광해군이 유자신의 딸과 혼인하여 살던 저택이다. 이곳에서 살던 광해군은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세자로 책봉되었고, 피란길에서 돌아온 광해군은 선조와 함께 입궐하게 된다. 그리고 선조 사후 왕위에 오르니 광해군이 살던 이현의 옛집은 왕의 잠저로 ‘이현궁’이 되었다. 이후 공빈 김씨의 사당이 있었고, 한때 인조의 어머니 연주부부인이 살았다.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소유이기도 했던 이현궁은 현재 종로플레이스, 인의빌딩 등이 들어서 있다.
-《제1장 왕이 살다 ‘이현궁’》 중에서 p. 33
창의궁(彰義宮)은 한성부 북부 순화방에 있던 영조의 잠저로 영조가 연잉군 시절에 살던 곳이다. 이곳은 원래 효종의 딸 숙휘공주와 부마 정재현이 살았는데 숙종이 연잉군에게 하사했다. 경종이 후사 없이 죽자 왕세제 연잉군이 경종의 뒤를 이어 영조로 즉위했다. 그 후 효장세자가 죽자 이곳에 효장묘를 세우고 의소세손 사후엔 의소묘를 세웠다. 순조 때는 효명세자 사당인 문호묘를 세우기도 했다. 1870년 문효세자의 문희묘가 이전하면서 영조, 장조, 정조, 순조 장남들의 사당이 되었다.
-《제1장 왕이 살다 ‘창의궁’》 중에서 p. 59
운현궁(雲峴宮)은 한성부 중부 정선방에 있던 흥선대원군의 집이자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 명복(고종)이 태어나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살던 곳이다. 이곳은 원래 지명인 구름재에서 이름을 따와 ‘운현궁’이라 불리게 되었다. 운현궁은 고종이 명성황후와 가례를 치른 곳이고, 흥선대원군이 섭정하며 나랏일을 보던 곳이기도 하다. 한양 내의 궁 중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고, 소규모의 궁궐과 같이 사대문을 갖춘 곳으로 궁의 형태를 살펴볼 수 있다.
-《제1장 왕이 살다 ‘운현궁’》 중에서 p. 77
도정궁(都正宮)의 사진들을 마음으로 새기며 눈을 감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도정궁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인왕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의 작은 수로가 있는데 그곳을 건너면 솟을대문에 양쪽으로 긴 담장의 줄행랑이 나타난다. 일꾼이 많으니 행랑채도 길다.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인 경원당이 나타나고 동쪽에 한옥이 한 채 있다. 북쪽을 향해 ‘ㄷ’자 모양을 한 한옥이다. 무슨 용도로 사용한 곳일까? 사랑채의 부속 건물로 주인이나 손님을 위해 음식을 만들거나 시중을 들기 위한 공간이 아니었을까? 이 한옥 뒤로 계단이 나오고 이곳에 덕흥대원군이 심은 회양목과 선조가 심은 총죽도 보인다.
-《제2장 왕을 낳은 부모가 살다 ‘도정궁’》 중에서 p. 110
조선 왕실의 후궁 7명의 신주가 모셔져 있는 칠궁은 1968년 1월 21일 북한 간첩들이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를 기습하려 했던 사건(1ㆍ21사건 또는 김신조 사건)으로 대변화를 겪는다. 북한군 31명이 청와대 침투를 목적으로 휴전선을 넘어온 사건이다. 이들은 경복고등학교 뒷문과 칠궁 사이까지 침투했다. 종로경찰서장 최규식이 이들을 제지하다 죽었으며 시민도 사망했다. 이 사건 이후 청와대 경호를 이유로 창의문로와 효자로가 만나는 칠궁 서쪽 도로를 뚫었다. 이 공사로 칠궁은 축소, 이건되었고 1978년에 지은 영빈관으로 인해 칠궁 앞이 막혀버렸다.
-《제2장 왕을 낳은 부모가 살다 ‘칠궁’》 중에서 p. 156~157
영조는 영빈 이씨가 죽은 해인 1764년에 사당을 세웠다. 한성부 북부 순화방(順化坊)에 사당을 건립하고 ‘의열궁(義烈宮)’이라 했다. 영조는 대의로 사직을 보호하기 위해 영빈 이씨가 아들의 죽음을 도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신하들이 반발하지 못하도록 대상 날 궁(宮)의 칭호와 원(園)의 칭호는 전에 이미 하교했다고 못 박는다. 왕도 되지 못한 세자의 생모 사당에 ‘궁’호를 붙여준 것이다. 실록은 ‘의열궁(宮)’ 또는 ‘의열묘(廟)’로도 쓰고 있다. 그러나 정조의 생각은 달랐다. 어찌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 의열이겠는가? 1788년에 정조는 베풀 선, 기쁠 희를 써서 묘 이름을 ‘선희(宣禧)’라 고쳤다. 이때부터 의열궁은 선희궁이 되었다. 선희궁은 계속 존속되다가 1870년에 일시 육상궁에 옮겨 모셨다가, 1897년 다시 선희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육상궁으로 옮겨진 신위는 정조의 후궁 수빈 박씨의 사당인 경우궁과 합사되었으니 시할머니와 손주 며느리가 한 건물에 있게 되었다.
-《제2장 왕을 낳은 부모가 살다 ‘선희궁’》 중에서 p. 195
세종은 병이 잦았고, 자녀들의 요절 등으로 경복궁 풍수설의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세종은 말년에 경복궁을 기피하여 아들, 사위, 형제 등의 집으로 옮겨 다녔는데, 영응대군 집을 지을 때 집 동편에 한 궁을 세워 거처할 곳을 준비했다. 그리고 영응대군의 집 동쪽 별궁에서 눈을 감았다. 영응대군의 집을 빈소로 삼았고, 왕세자 문종은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했다. 약 4개월 만에 장례를 치르고 세종의 후궁들은 자수궁으로 옮겼다.
-《제3장 왕자와 공주가 살다 ‘안국동별궁’》 중에서 p. 250
1823년 명온공주는 김현근과 혼인한 후 1824년 죽동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순조와 효명세자는 명온공주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마 김현근이 심한 정신질환이 있어 발작을 일으키면 온 동네가 소란스러웠다. 김현근의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경악법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환자를 놀라게 하여 환자의 몸속에 있는 악귀를 쫓아내는 방법이었다. 이후 밤마다 죽도(竹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 이 집을 ‘죽도궁’이라 했다가 ‘죽동궁’이라고 불렀다.
-《제3장 왕자와 공주가 살다 ‘죽동궁’》 중에서 p. 311
수진궁은 평원대군의 집으로, 처음에 평원대군가의 사당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자식 없이 죽은 왕자들의 사당으로 내려오다가 미혼으로 일찍 죽은 효종, 현종의 딸들을 모셨고 숙종 후궁들의 신주를 모시게 되었다. 1907년 제궁에 속한 토지를 제실재산정리국에서 관리하게 하고, 제사는 장례원(掌禮院)에서 지내게 하면서 수진궁도 폐쇄된다.
-《제3장 왕자와 공주가 살다 ‘수진궁’》 중에서 p. 358
출판사 서평
왕이 살았던 궁궐宮闕은 아는데 왕가王家는 뭘까?
왕이 살았던 영희전 ㆍ 이현궁 ㆍ 어의궁 ㆍ 창의궁 ㆍ 운현궁이며,
왕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셨던 경모궁 ㆍ 육상궁 ㆍ 연호궁 ㆍ 저경궁 ㆍ 대빈궁 ㆍ 선희궁이고,
출가한 왕의 자녀들이 살던 용동궁 ㆍ 계동궁 ㆍ 사동궁 ㆍ 창성궁 ㆍ 죽동궁이 바로 왕가다.
이 책에 대하여
-궁궐宮闕과 왕가王家는 어떻게 다른가?
-알려지지 않은 역사, 왕가의 자취를 찾아서
왕가란 무엇인가?
궁(宮)은 왕족이 사용하는 장소로 왕가, 궁집, 궁가, 궁방이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기능에 따라 잠저, 사당, 제택으로 나눌 수 있다.
잠저
잠저는 왕의 서열이 아닌 왕자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을 말한다. 만약 세자가 아닌 왕자가 왕위에 오르게 되면, 궁궐 밖에서 살다가 궁궐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때 왕이 살던 옛 집을 ‘잠저’라 한다. 잠저는 《주역》에서 유래한 ‘잠룡(潛龍)’에서 비롯된 단어로 ‘잠겨있는 용’, 즉 ‘숨어 있던 왕이 즉위한다’는 뜻이다. 세조가 혼인하여 살던 영희전, 광해군이 살던 이현궁, 인조가 살았고 효종이 태어나 살던 어의궁, 영조가 살던 창의궁, 고종이 태어나 살던 운현궁이 잠저에 속한다.
사당
왕비가 아닌 후궁에게서 태어난 왕자가 왕이 될 경우 왕의 어머니는 왕비가 아니므로 죽은 후에 신주를 종묘에 모시지 못한다. 또 왕위 계승자가 아닌 왕자가 왕이 되었을 때 그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왕의 어머니와 아버지, 즉 사친(私親)을 모시는 사당을 궁이라 불렀다. 궁에는 어머니의 사당인 육상궁, 연호궁,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 경우궁, 덕안궁과 아버지의 사당인 도정궁, 경모궁, 누동궁이 있다.
제택
혼기가 차서 출가한 왕의 자녀들인 왕자가 살던 집과 공주나 옹주가 혼인 후 남편과 살던 집도 ‘궁’이라 불렀다. 그 예로 용동궁, 계동궁, 사동궁, 창성궁, 죽동궁 등이 있다. 그리고 왕가의 특별한 행사를 위해 지은 ‘별궁’으로 안국동별궁이 있고, 요절하거나 후사 없이 죽은 왕자와 공주를 위한 수진궁도 있었다.
‘왕가’라는 키워드를 통해 읽는 역사 속 조선의 역사
병이 잦았던 세종은 영응대군의 집 동별궁에서 눈을 감았고, 세종이 승하한 후 세종의 후궁들은 자수궁에 거처하며 여생을 마쳤으며, 능양군은 어의궁에서 인조반정을 일으켜 왕위에 오르고, 고종과 명성황후는 운현궁에서 가례를 치렀고, 흥선대원군은 이곳에서 섭정하며 나랏일을 보았으며, 고종은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황급히 경우궁으로 피신했으나 왕을 알현하러 왔던 조선 중신들이 이곳에서 살해되었으며, 3ㆍ1운동 민족대표 29명은 순화궁이었던 태화관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임오군란 때 살해당한 민겸호가 살던 집 용동궁은 독일인 정치 고문 묄렌도르프가 양옥으로 개조해 살았고, 명성황후의 오빠 민승호 일가는 죽동궁에서 폭탄 테러로 몰살당했다.
이외에 세조가 의숙공주에게 물려주었던 영희전, 숙종의 후궁이며 경종의 생모인 희빈 장씨의 사당이었던 대빈궁,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 순헌황귀비 엄씨의 사당이었던 덕안궁, 철종이 태어난 누동궁, 영조의 딸 화유옹주가 살던 창성궁 등 지금은 표지석조차 찾아볼 수 없는 왕가의 자리에서 그 시절 역사와 사연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 많던 궁은 왜 사라졌는가?
고종은 1904년 궁중에 황실제도정리국을 설치하여 황실의 재산을 정리하기 시작하여, 1907년에는 대부분의 황실 재산이 국유화되었다. 자식이 왕위에 올랐으나 종묘에 들지 못하는 후궁들의 사당이 한곳에 모여 칠궁이 된 것도, 선농단과 선잠단이 사직단에 합쳐진 것도, 역대 어진을 모신 전각들이 선원전만 남기고 사라진 것도 이때였다. 더불어 한양의 궁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다. 특히 황실 재산을 국유화하기 위해 전 국토의 소유권을 조사하고, 조사 결과 황실의 재산으로 판명되면 국유화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조선 시대 한양의 왕실 가족들이 사용하던 궁들은 국유화되거나 개인의 소유가 되면서 그 모습이 변해갔다.
왕가, 조선의 역사를 밝히다
1937년 헬렌 켈러가 방문한 서울맹아학교는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의 사당 선희궁이었고, 고종의 정치 고문 묄렌도르프가 살았던 곳은 순회세자의 궁가였던 용동궁이었다.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태화관 별유천지는 영응대군의 딸 길안현주와 사위 구수영이 살았고, 헌종의 후궁 경빈 김씨가 나와 살던 순화궁이었다.
갑오개혁을 지나 고종 때 엄황귀비의 소유가 되었다가 진명여학교가 세워진 곳에 지금은 청와대 경호대의 군화 소리만 들려오는 곳이 창성궁이었다. 청와대 내에 있는 칠궁은 아들이 왕위에 오른 후궁들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고, 경우궁은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을 본 유일한 어머니 수빈 박씨의 사당이었다. 이렇듯 왕가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조선의 역사와 조선 왕실의 가족사가 그대로 드러난다.
조선 시대 왕가가 있던 자리는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
세조의 잠저였던 영희전에는 서울중부경찰서, 인조와 효종의 잠저인 어의궁에는 롯데시네마 피카디리극장, 사도세자의 사당이었던 경모궁에는 서울대학의학박물관, 선조와 인빈 김씨의 소생 정원군이 살고 인빈 김씨의 사당이었던 저경궁에는 한국은행(화폐금융박물관),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의 사당인 선희궁에는 국립서울농 ? 맹학교, 순헌황귀비의 사당인 덕안궁에는 서울시의회와 코리아나호텔, 세종의 여덟째 아들 영응대군의 왕가이자 세종대왕이 눈을 감은 동별궁에는 풍문여자고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세종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파의 종가는 고급 한정식집 필경재가 되었다. 덕흥대원군의 궁가이자 선조의 잠저인 도정궁의 사랑채 경원당은 건국대학교 내에 있다.
이 책은 서울시문화유산해설사로 활동하는 저자가 다소 생소한 ‘궁(宮)’이라는 문화재에 호기심을 갖고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저자는 지도 한 장을 들고 서울 시내에 있던 ‘왕가(王家)’를 구석구석 찾아다녔다. 대부분은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아 저자는 철저한 답사와 수많은 자료를 찾아가며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왕가의 역사와 사연을 샅샅이 조사했다. 그리고 사라져가는 왕가와 묻혀진 그 역사를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그런 만큼 이 책은 땀과 역사에 대한 열정의 소산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73433759 |
---|---|
발행(출시)일자 | 2013년 02월 22일 |
쪽수 | 408쪽 |
크기 |
152 * 210
* 30
mm
/ 576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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