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주문/바로드림/제휴사주문/업체배송건의 경우 1+1 증정상품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패키지
북카드
키워드 Pick
키워드 Pick 안내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다른 연관 도서를 다양하게 찾아 볼 수 있는 서비스로, 클릭 시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한 다양한 책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키워드는 최근 많이 찾는 순으로 정렬됩니다.
작가정보
저자(글) 개빈 멘지스
개빈 멘지스(Gavin Menzies) 1937년에 중국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까지 중국인 유모의 손에 자란 그는 1953년 영국 해군에 입대해 17년 동안 잠수함 장교로 근무했다. 퇴역 후 피치가노 해도를 접한 것을 계기로 정화 함대의 숨겨진 항해를 밝히는 연구에 착수했다. 그의 연구는 저자가 해군 장교만이 가질 수 있는 해도와 지도, 항해, 천체관측 등에 대한 해박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에게 세계사의 숨은 진실을 밝혀내겠다는 열정과 피땀어린 노력이 없었다면, 그의 탁월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도아무런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1차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도 정화 함대의 세계 항해를 입증할 만한 사료와 유적,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녔다. 그는 14년 동안 무려 140여 개국, 900곳 이상의 문서보관소, 도서관, 박물관, 과학연구소, 중세 후기의 주요 항구 등을 답사했으며, 그가 섭렵한 옛 지도, 각종 텍스트, 동식물, 유물과 유적, 고대의 건축물, 비석, 바위, 그리고 전문가와 지역 주민들과의 인터뷰 등 고증 자료의 방대함은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이다. 그는 2002년 3월 15일 영국 런던의 왕립 지리학회에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강연은 세계 36개국, 20억 시청자에게 생중계되었다. 그때 이후로 각 대륙 사람들로부터 전해받은 증거들을 바탕으로, 멘지스는 지금도 정화 원정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의 생생한 연구 성과는 웹사이트(www.1421.tv)에 담겨 있다. 조행복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역서로는 『종말의 역사』(1999, 공역)이 있다. 현재 강릉대학교에서 서양사를 강의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토니 주트, 티머시 스나이더, 브루스 커밍스, 존 키건, 애덤 투즈 등 걸출한 역사가들의 현대사 저술을 한국어로 옮겼다. 옮긴 책으로 『전후 유럽』, 『블랙 어스』, 『한국전쟁』, 『제1차 세계대전사』, 『대격변』 등이 있다.
목차
- 서문 : 탐험의 시작
一 중국이라는 제국
1. 황제의 원대한 계획
2. 벼락이 치다
3. 돛을 올리다
二 길라잡이 별
4. 희망봉을 돌다
5. 신세계
三 홍보(洪保)의 항해
6. 남극과 호주를 향한 항해
四 주만(周滿)의 항해
7. 호주
8. 보초와 향료 제도
9. 아메리카의 첫 식민지
10. 중앙아메리카의 식민지들
五 주문(周聞)의 항해
11. 악마의 섬
12. 순항하는 보선단
13. 북아메리카의 정착지
14. 북극 탐험대
六 양경(楊慶)의 항해
15. 수수께끼를 풀다
七 왕관을 상속받은 포르투갈
16. 세상의 끝은 어디인가
17. 신세계의 식민지 건설
18. 거인의 어깨 위에서
책 속으로
거인의 어깨 위에서 보다 후에 콜럼버스, 다 가마, 마젤란, 쿡은 이미 중국인들이 ‘발견한 것들’을 다시 발견하게 되는데, 그들 모두가 이미 다른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는 ‘미지’의 지역을 향해 항해를 떠날 때 그들 모두가 중국인들이 만든 지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절할지는 모르지만 어느 유명한 말을 인용해보자. “그들이 다른 사람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그들이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_ 본문 37쪽 명나라 황실의 파티 1421년 2월 2일 북경에서는 자금성 낙성식이 거행되었다. 북경을 방문한 2만 6000명의 내빈들은 열 가지 음식이 번갈아 나오는 연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낙성식이 있은 지 3주 후에 런던에서 거행된 헨리 5세의 결혼식에는 고작 600명의 내빈이 참여했고 소금에 절인 건대구와 마른 빵조각이 요리의 전부였다. 중국은 100만 대군과 총포를 보유한 반면, 헨리 5세가 전쟁에 동원할 수 있는 병사는 5만이었으며 무기도 장궁, 검, 창이 고작이었다. 낙성식에 참석한 내빈들을 귀국시키기 위해 100여 척의 배에 3만 명의 승무원을 갖춘 영락제의 선단이 떠나려 했을 즈음, 프랑스와 전쟁을 하러 가는 헨리는 100명의 군사들을 네 척의 어선에 나눠 태우고 영불해협을 건넜다. _ 본문 64~65쪽 위대한, 그러나 용도폐기된 유산 …… 외국과의 교역과 접촉을 막기 위해 길이 700마일, 폭 30마일에 이르는 남부 해안 지역을 초토화하고 그 지역 주민들을 내륙으로 이주시켰다. 조선소는 폐쇄되었고 대형 보선의 건조 계획과 정화의 원정 기록은 파기되었다. 병부낭중 유대하는 공문서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삼보(정화)의 서쪽 대양 원정에 들어간 비용과 곡식은 막대했으며 거기다 원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희생 또한 엄청났다.” 선단이 중국으로 가져온 물품들은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었으며, 따라서 그 원정 기록 역시 태워 없애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유대하는 병부상서에게 정화 원정의 일지와 기록은 ‘유실’되었다고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 이로 인해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 될 수 있었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양 원정 기록이 영원히 사라져버렸으며 중국인의 마음속에서 외국이라는 존재를 완전히 지워내고 말았다. …… 아프리카와 호주, 남북아메리카에 조성된 중국인의 개척촌은 더 이상 지원을 하지 않은 채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방치되었다. _ 본문 85쪽 그들은 정말 몰랐을까? 나는 미국과 유럽의 역사가들이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쿡이 호주를 발견했다고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세계를 납득시킬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중국인들이 콜럼버스보다 먼저 아메리카로 항해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 …… 놀랍게도, 콜럼버스보다 먼저 중국인들이 아메리카로 항해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들이 1000권도 넘는 책들에 제시되어 있고, 심지어 그 문헌들은 두 권짜리 참고도서 목록으로 요약되기도 했다. …… 조지 카터 박사가 말했듯이, “중국학 연구자들과 아시아 문화사가들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문명에 대한 중국의 영향을 보여주는 압도적인 증거들이 도처에 퍼져 있다는 사실에 대개는 깊은 충격을 받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중국인들이 아메리카를 발견했을 뿐 아니라 그곳에 식민지를 건설했음을 시사하는 중국 문헌에 대해 모르는 체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_ 본문 281~283쪽 중국, 서양 근대사를 다시 쓰다 신세계와 호주 탐험에서 중국의 우위를 주장한다고 해서, 디아스와 콜럼버스, 마젤란, 쿡의 업적과 기억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이 용감하고 재주 많은 사람들의 공적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너무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예를 안겨줄 때가 되었다. 그 뛰어난 중국인 제독들은 디아스보다 60년 먼저 희망봉을 회항했으며, 마젤란보다 98년 앞서 마젤란 해협을 통과했고, 쿡 선장보다 300년 먼저 호주를 탐사했고, 남극과 북극은 최초의 유럽인보다 400년 앞서, 아메리카는 콜럼버스보다 70여 년 먼저 탐사했다. 위대한 제독 정화와 홍보, 주만, 주문, 양경은 기억해 기릴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첫 주자였고, 가장 용감하고 가장 담대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_ 본문 466쪽
출판사 서평
1. 연구의 계기 ■ 옛 지도에 담긴 비밀 10여 년 전 어느 날 저자 개빈 멘지스는 옛 해도 한 장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1424년’이라는 연도와 ‘주아네 피치가노’라는 서명이 적혀 있었다. 피치가노 해도는 지금의 카리브 해에 있는 푸에르토리코와 과들루프를 상세히 묘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1492년 콜럼버스가 카리브 해에 첫 발을 딛기 약 70년 전에 누군가 이 섬들을 자세히 탐사했다는 얘기가 된다. 15세기 초에 대규모 항해를 통해 정밀한 지도를 제작했을 가능성이 있는 나라는 어디였을까? 당시 그와 같은 대규모 원정을 감당할 수 있는 물적 기반과 과학 지식 그리고 선박 건조와 항해 경험을 갖고 있었던 나라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중국뿐이었다. 그리고 그 시기는 절묘하게도 1421~23년 중국 명나라 정화 함대의 제6차 원정과 맞아떨어진다. ■ 퇴역 해군 장교의 눈으로 본 세계사 저자는 위성항법이 개발되기 전, 자와 컴퍼스를 대고 별을 보며 항로를 그려내던 시절부터 영국 해군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래서 옛 항해가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며 그들의 항로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고지도와 해도, 항해, 천체관측 등에 대한 전문가적 식견을 갖추고 있었다. 심지어 지도를 그린 사람이 해역을 밤에 지났는지 낮에 지났는지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여타의 역사학자들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능력을 바탕으로, 저자는 일견 무모하기 짝이 없는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 중국, 서양보다 먼저 지리상 발견에 나서다 대항해 시대를 풍미한 세계지도는 피치가노 해도뿐 아니라, 칸티노 지도, 피리 레이스 지도, 진 로츠 지도, 발트제뭘러 지도 등 여러 종이다. 멘지스는 이들을 시대순으로 나열하고 종합한 결과, 각각의 지도가 독립된 작품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지도들을 조합한 것이며, 원 제작자는 바로 중국인이었다고 가정했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조선의 학자 권근과 이회가 제작한 강리도(彊理圖)를 접하면서 더욱 확고해진다. 강리도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아프리카이다. 그 지도에 아프리카의 동, 서, 남부 해안이 정확히 그려져 있는 것을 볼 때, 누군가가 희망봉을 돌아 아프리카 서부까지 진출했음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남아프리카에 도달한 것이 60년 이후의 일이란 점과 당시의 지도 제작 기술 등을 감안한다면, 중국의 정화 함대가 희망봉을 돌아 카보 베르데 제도에 도착했음이 확실하다. 이를 토대로, 멘지스는 중국 선단들이 아프리카 서해안에서부터 해류를 따라 각기 북쪽과 남쪽으로 나뉘어져 대서양을 횡단,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했을 것이라 가정하고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한다. ------------------------------------------------------------------------------------------------ 2. 주요 내용 세계 최대의 해양 제국, 그리고 사라진 기록 명나라 영락제는 1405년부터 1433년까지 모두 일곱 차례에 걸쳐 대규모의 세계 원정을 실시했다. 그때까지 그런 항해가 가능한 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명나라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치적 이유로 정화의 원정은 중단되었고, 그에 관한 거의 모든 기록이 불태워졌다.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는 사라진 진실을 밝히기 위한 장엄한 여행의 기록이다. ■ 아메리카, 호주, 남극대륙, 북극해…… 중국, 세계 곳곳을 누비다 정화의 함대는 4개의 소선단으로 나뉘어 세계를 항해한다. 각 선단의 제독은 홍보, 주만, 주문, 양경이었다. 홍보는 남아메리카의 동부 해안과 남극, 호주, 뉴질랜드를 탐사했고, 주만은 남북 아메리카의 서해안과 환태평양 지역의 나라들을 방문했다. 주문은 북아메리카의 동부와 그린란드 그리고 북극해를 항해했다. 양경은 인도양 주변 나라들을 탐사했다. 그들은 닿는 곳마다 해안을 측정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흔적을 남겼다. (항로:http://www.1421.tv/pages/maps/voyages.htm) ■ 유럽, 거인의 어깨 위에 서다 포르투갈의 항해왕자 엔리케를 비롯, 디아스, 다 가마, 콜럼버스, 마젤란, 쿡 등 유럽 탐험가들의 신대륙 발견과 세계 항해는 어떻게 가능했는가? 이들은 중국인이 만든 지도를 보고 항해 계획을 세웠으며, 그 지도를 손에 들고 항해를 하였다. 이 책에서는 그들의 항해 속에 담겨 있는 중국과 중국인의 흔적을 추적한다. ------------------------------------------------------------------------------------------------ 3. 다양한 증거들 ■ 기술적 증거_ 유럽 최고보다 10배 뛰어난 명나라 함대 정화의 대선단에는 250척의 정크선과 이를 보좌하기 위한 3500척의 기타 선박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승무원은 3만 명이었다. 정크선의 크기는 전장 150미터에 선폭이 60미터여서 보통의 어선 50척과 맞먹는 크기였다. 정화 함대의 구성을 보면, 마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호위함들로 둘러싸인 함대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대함대의 선박들은 바다에서 3개월 동안 끄떡없이 버틸 수 있었고, 뭍에 상륙하는 일 없이 약 7200킬로미터를 항해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1421년 당시 중국 다음으로 막강한 선단을 거느리고 있는 나라는 베네치아였다. 그들은 300척의 갤리선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전장 50미터, 선폭 6미터였다. 그리고 최대 화물 적재량은 고작 50톤에 불과했다. 그에 비해 영락제의 보선은 높이만 12미터나 되었다. 훗날 콜럼버스가 신세계를 찾아 항해할 때 타고 갔던 기함 니나 호의 전장은 중국 정크선의 12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중국 보선의 적재량은 2만 톤이었고 말라카까지는 5주, 호르무즈 해협까지는 12주면 충분했다. ■ 문헌적 증거_ 콜럼버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 『무비지(武備志)』: 항해술과 해전술에 관한 중요한 내용을 수록한 항해 교범으로, 문헌 폐기 정책의 와중에서 용케 보존되었다. 정화가 원정 과정에서 기록한 별의 위치, 위도 등의 구체적인 방위와 항로에서 만나게 되는 섬, 곶, 만, 후미의 구체적인 모양새 등을 수록하고 있다. ─ 『이역도지(異域圖志)』: 1430년의 세계 각지의 풍물과 생물들에 대한 중국인의 지식을 가장 간결하고도 강력하게 보여주는 도해이다. 밀로돈 등 아메리카 특유의 생물들이 소개되어 있다. 콜럼버스 항해 이전에 출간되었다는 점에서 중국인의 아메리카 선점을 증명하는 자료이다. ─ 『니콜로 다 콘티의 여행기』: 정화 함대의 실물은 물론 관련 기록까지 정책적으로 파기되었지만, 다행히도 한 서양인의 기록에 정화 함대의 모습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니콜로 다 콘티는 정화 선단의 정크선을 상세히 묘사했을 뿐 아니라 그 함대에 동승하여 인도, 호주, 중국 등지를 함께 항해하여 정화 원정에 대한 여러 가지 정황적 증거들을 남겼다. ─ 콜럼버스의 항해 일지: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애초부터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의 일지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내가 본 지구의에서, 그리고 세계지도의 도면에서 그 섬은 이 지역에 있었다.” ─ 마젤란의 항해 일지: “총사령관은 [태평양으로] 빠져나갈 또 다른 해협이 있음을 알고 있고, …… 포르투갈 왕의 한 해도에서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이른바 마젤란 해협은 마젤란이 항해하기 전에 포르투갈의 해도에 나타나 있었으며 태평양 또한 마찬가지였다. ? 생물학적 증거_ 마야인들은 중국 닭을 키웠다 ─ 밀로돈: 밀로돈은 약 300년 전 멸종할 때까지 남아메리카 남부의 파타고니아 지역에만 생존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동물이다. 그런데 1430년 간행된 『이역도지』에 밀로돈과 매우 흡사한, 개의 머리를 지닌 동물이 등장한다. ─ 닭: 유럽의 정복자들이 멕시코의 마야 문명을 점령했을 때, 그들은 유럽의 닭과는 아주 다른 아시아 닭을 발견했다. 마야인들은 달걀을 얻기 위해서나 식용을 위해서가 아니라 점복 같은 의식을 행하기 위해서 닭을 사용했는데, 이는 중국인들의 사용 습관과 흡사했다. 게다가 닭의 마야식 명칭인 켁(Kek)이나 키(Ki)는 중국어의 그것(지[ji])과 비슷했다. ─ 농작물들: 수백 년 동안, 세계적 식물의 전지구적 전파는 콜럼버스가 1492년 아메리카를 발견한 이후에 시작되었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인도와 아시아, 인도네시아, 아메리카, 심지어는 아프리카의 식물들 중에서 적어도 스물일곱 가지의 중요한 환금 작물이 콜럼버스 이전에 이미 하와이 섬으로 전래되었다. ■ 문화인류학적 증거_ 샌프란시스코의 중국 도자기 ─ 난파선: 중국 정화 함대의 것으로 보이는 난파선이 각지에서 인양되고 있다. 난파선은 방사성 탄소 측정법에 의해 중국이 15세기 초에 세계 곳곳을 누볐음을 입증하는 주요 근거이다. 샌프란시스코 만 근처의 새크라멘토 강에서 발견된 난파선에서는 철제 중국 냄비와 양귀비 씨앗이 있었고, 필리핀 판다난의 난파선 잔해 속에서는 멕시코 촐룰라 도자기, 베트남 도자기, 중국 경덕진의 청화백자를 포함한 여덟 나라의 도자기가 들어 있었다. 인양된 4722점의 품목 가운데 1000여 점에 대해서는 아직도 감정 절차가 남아 있지만, 그 결과가 종합적으로 정리되면 중국 정크선의 항로를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 체류흔적: 후쿠타카토의 멕시코 원주민 부족이 남긴 그림 가운데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붉은 옷을 입고 도착하는 중국인들을 묘사한 그림이 있다. 호주에서는 이런 원주민의 전승이 있다. “남자들은 긴 옷을 입었고, 여자들은 바지를 입었다. 그들은 …… 벼를 재배했고, 주거지를 나무로 만드는 원주민과 달리 돌로 만든 집에서 살았다. 여인들은 비단을 짜서 그 지역의 식물로 염색했다.” 뉴잉글랜드에 도착한 최초의 유럽인들은, 피부가 황동색이고 쪽 찐 머리에 동양의 의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 비석: 서아프리카 카보 베르데 제도의 자넬라, 콩고 삼각주의 마타디, 뉴질랜드의 루아푸케, 미국 메사추세츠 등지에서 중국인들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비석이 발견되고 있다. ─ 시설물: 이국 땅에 정착한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 탑이나 등대를 세웠는데, 로드 아일랜드의 탑이나 뉴포트의 원형탑은 사용한 재료나 제작 방법이 중국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며, 그린란드에서 발견된 가옥과 그 내부 구성은 중국인들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담아낸 듯하다.
기본정보
ISBN | 9788958280125 | ||
---|---|---|---|
발행(출시)일자 | 2004년 04월 21일 | ||
쪽수 | 602쪽 | ||
총권수 | 1권 | ||
원서명/저자명 | 1421 : the Year China discovered the world/개빈 멘지스 |
Klover
e교환권은 적립 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리워드는 작성 후 다음 날 제공되며, 발송 전 작성 시 발송 완료 후 익일 제공됩니다.
리워드는 리뷰 종류별로 구매한 아이디당 한 상품에 최초 1회 작성 건들에 대해서만 제공됩니다.
판매가 1,000원 미만 도서의 경우 리워드 지급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일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불편을 끼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래에 해당하는 Klover 리뷰는 별도의 통보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도서나 타인에 대해 근거 없이 비방을 하거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리뷰
- 도서와 무관한 내용의 리뷰
- 인신공격이나 욕설, 비속어, 혐오발언이 개재된 리뷰
- 의성어나 의태어 등 내용의 의미가 없는 리뷰
리뷰는 1인이 중복으로 작성하실 수는 있지만, 평점계산은 가장 최근에 남긴 1건의 리뷰만 반영됩니다.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200원 적립
문장수집
e교환권은 적립 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리워드는 작성 후 다음 날 제공되며, 발송 전 작성 시 발송 완료 후 익일 제공됩니다.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주문취소/반품/절판/품절 시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