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일요일 밤의 블랙홀

65212.jpg언스플래쉬

돌리던 채널을 멈추게 하는 마성의 영화가 있다. 남자들에게 독보적 1위는 <타짜>겠지만 이에 못지않은 영화를 하나 더 꼽는다면 나에게는 <인터스텔라>다. 지난 일요일 밤 무심코 누르던 채널 버튼의 궤도는 <인터스텔라>에 걸려버렸고, 내 시간은 블랙홀의 강력한 중력에 걸린 듯 엔딩 크레디트까지 빨려 들어갔다.

나에게 특별한 월요병 치료제가 있다면, 일요일 밤에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를 정주행 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인터스텔라>나 <프로메테우스> 그리고 조디 포스터 주연의 97년 작 <컨택트> 같은 영화다. 차원과 은하계 너머 미지의 세계로, 인류의 기원 같은 원대한 질문의 답을 찾는 여정을 다뤘다. 보다 보면 지구의 지표면에서 직장인이 느끼는 출근하기 싫은 감정 따위는 하찮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은하계의 티끌만 한 존재인 나의 월요병이 대단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며 그럭저럭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이 철저한 자기 객관화의 장점일지도 모른다.

물리적 기준에서 내가 우주 속 티끌이라는 것은 반박의 여지가 없지만, 존재론적 측면에서 어쩐지 받아들이기가 힘들 때가 있다. 리처드 도킨스 같은 진화생물학자는 인간 역시 끝없는 유전자의 자기 복제 산물임을 강조했고 과학적으로도 진화의 증거가 있지만,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우연한 세포분열의 반복이 만들어 낸 것이라니? 그렇게 받아들이기에 나는 나에게 있어 정말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이니까.

내가 <프로메테우스>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인류 기원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인류를 창조한 '엔지니어'라고 불리는 외계의 존재들에게, 우리를 만든 이유를 묻기 위해 떠나는 엘리자베스 쇼 박사와 탐사대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과학자인 엘리자베스 쇼 박사도 인류의 기원이 궁금했지만, 예술가인 고갱도 같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그의 작품은 우리가 왜 존재하게 되었고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이 질문은 음미할수록 벗어날 수 없는 본질적 호기심에 빠지게 한다. 우리는 왜 존재하게 되었을까. 우연한 진화의 결과물일까? 혹은 영화에서처럼 어떤 의지의 산물일까? 왜 우리는 최소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스스로의 존재에 물음을 던지고 고민하게 된 걸까? 오랜 시간 인간은 종교와 예술, 철학 그리고 과학이란 도구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개인의 신념에 따라 답을 내린 사람도 있고 여전히 물음표를 지우지 못한 사람도 있다.

여전히 물음표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나 같은 부류를 위해, 리들리 스콧 같은 영화감독은 <프로메테우스> 같은 영화를 만들고, 나사에서 만든 로봇 큐리오시티는 8천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화성의 사막에서 지금도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인류는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 혹은 내가 죽게 되면 알 수 있을까?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인류가 가진 강력한 힘인 상상력은 앞으로도 <프로메테우스>나 <인터스텔라>보다 더 블랙홀 같은 영화를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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