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판권의 뒷면] 우크라이나와 우리는 지척에 있었다 - 『전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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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일기』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첫날부터 한 그림 작가가 두 아이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피란하며 겪은 일을 연필 그림과 짧은 일기로 남긴 기록이다. 내가 원고 일부를 전달받은 것이 3월 20일, 책 제작에 들어간 날이 4월 5일이다. 약 보름 만에 완고 입수, 계약, 번역, 디자인, 편집, 저자 교정, 최종 검수가 모두 진행된 것이다.


한국과 우크라이나를 이어준 연결자가 있다 

우크라이나 작가의 책이 어떻게 이리도 빨리 한국에서 최초로 출판될 수 있었을까?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연결자가 있었다. 그는 작가의 SNS에 올라오는 그림과 글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다가 내게 이 원고를 책으로 만들어달라고 연락했다. 그의 빠른 판단과 직감이, 지금 자국에서는 책을 출간할 수 없는 우크라이나 작가를 위해 한국의 출판사가 기민하게 해낼 수 있는 일이 반드시 있으리라는 확신이 이 책의 시작이었다. 그 연결자의 이름은 안타깝게도 밝히지 못한다. 하지만 『전쟁일기』를 만드는 내내 나는 그분의 이름을 혼자 자주 불렀다. 지금 내 손은 이연실의 손이 아니라, 내게 SOS 신호처럼 절박하게 이 원고를 보내준 그분의 손이라 생각하면서 나는 일했다.


번역가, 통역사, 에이전트 1인 3역 - 정소은 번역가

거짓말 같은 일정 안에 이 책을 출간할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인 올가 그레벤니크와 나 사이에 정소은 번역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러시아 문화를 연구해 온 정소은 번역가는 자신이 그토록 오래 아끼고 공부한 나라가 전쟁을 일으킨 이 참담한 상황에서 어떤 도움이라도 되고자 했다. 그리고 자신의 번역료 전액을 우크라이나에 기부해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한 일은 단지 놀라운 속도로 텍스트를 번역해 낸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까다로운 계약 조항부터 양국의 편집 방식과 문화 차이까지, 그는 세심하게 번역하고 조율해 내는 현명한 에이전트이자 통역사이기도 했다. 책을 만드는 동안 그는 내게 잠은 자느냐고 자주 염려했지만, 나는 안다. 역자인 자신에게서 원고나 의견이 머무는 시간이 최소화되도록, 작가와 편집자가 일할 시간을 단 1분이라도 더 벌어주기 위해서 가장 잠 못 든 사람은 바로 그였음을.


마감 카운트다운을 함께한 한국의 작가들 - 김하나, 은유, 황선우

인쇄 넘기기 이틀 전 이 책의 추천사를 써달라는, 무리를 넘어 거의 무례에 가까운 청탁을 드리고 말았다. 김하나, 은유, 황선우 세 작가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곧장 쓰겠다고 답했다. ‘당연히’ 쓸 수 있다고. 편집자는 마감이 임박할수록 정신은 예민해지고 체력은 약해져 간다. 그때의 나에게 이것은 중요한 책이라고, “평화의 확성기”(은유)이자 “사람이 사람을 돕는다.”(황선우)는 증거이고, “뉴스가 전하지 못하는 전쟁의 진실”(김하나)이 담긴 책이라고, 그러니 약해지지 말라고 북돋워 준 한국의 작가들이 있었다. 느닷없이 쳐들어온 마감에도 자신의 시간과 문장과 힘을 기꺼이 뚝 떼어서 내어준 세 작가의 선의와 연대 덕분에 이 책은 더 큰 힘을 받아 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다.


책 판 돈 돌려보내는 서점들

이렇게 시간과 사투를 벌이며 책을 완성했는데, 최근 동네 책방들에서 책값을 출판사로 다시 보내온다. 반품이나 환불을 요청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제주의 만춘서점, 아무튼책방은 『전쟁일기』 도서 정가 판매액 전액을 송금해 왔다. 우크라이나 현지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곳, 저자가 원하는 곳에 전해 달라는 것이다. 화성의 갈피책방, 울산의 책빵자크르도 수익금을 우크라이나에 기부한다고 팻말을 내걸었다. 전쟁 중에도 이야기가 탄생했기에 작가, 번역가, 편집자가 온 힘을 다해 책 한 권을 만들었다. 그저 “전쟁 그만!”이라고 외치기 위해서.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이들은 지금 그 작은 책에 큰마음을 실어 우크라이나로 날려 보내고 있다.



전쟁일기
전쟁일기
올가 그레벤니크 저 | 정소은 역
이야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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