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편집자의 일] 편집자는 미래의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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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이기적이어서 상대의 입장을 잘 헤아리지 못한다. 다른 이의 입장에 서지 못하는 사람을 탓할 수는 없다. 그 또한 자기보호의 일환일 테니까. 자기 상황도 감당이 안 되는데 감히 남까지 헤아릴 겨를이 생기겠는가. 다만 내 일, 내 직업, 내 위치가 제일 힘들다는 생각은 상대의 일, 상대의 직업, 상대의 위치를 간과하게끔 만들어 결국 스스로에게 독이 된다는 점만큼은 인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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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책이 필요하다. 상대 머릿속에 직접 들어가는 일은 능력 밖의 영역이지만, 책으로 상대의 목소리와 생각에 손쉽게 가닿을 수는 있다. 편집자를 꿈꾼다면 함께 일하는 마케터, 디자이너, 번역자, 서점운영자 등의 목소리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선배 편집자의 글은 일의 능력을 향상시켜주지만, 마케터, 디자이너, 번역자, 서점운영자가 쓴 책은 일의 태도를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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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모모씨의 일일』?은 편집자와 가깝게 마주하고 일하는 대표적인 직업군 가운데 하나인 번역가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책이다. 과학과 인문 도서를 주로 번역하는 노승영 번역가의 진중한 태도와, 스릴러 등 소설을 주로 번역하는 박산호 번역가의 사려 깊은 시선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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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곳곳에 나처럼 ‘과연 이 일로 평생 밥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 싶어 불안해하는 마음이 보인다. 그들 역시 을의 입장, 병의 입장, 정의 입장으로 이른바 ‘갑질’에 휘둘리느라(심지어 그 갑질에는 편집자도 포함된다) ‘이 지겨운 밥벌이 이제 그만 때려쳐야지’ 외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이 일이 아니면 내가 이만한 천직을 어디서 만나냐’고 한숨 쉬며 오늘도 두 손 가득 교정지를 끌어안고는 컴퓨터 앞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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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심지어 담당 편집자조차) 알아주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더 적합한 단어 하나를 찾아내기 위해 국립국어원 외래어표기법과 인터넷 세상을 헤매고, 혹시라도 놓친 “단어의 배신”이 있을까 싶어 아는 단어도 돌다리 두드리듯 속뜻과 관용어까지 하나하나 찾아본다. 애면글면 문장을 다듬고 만지고 고치고 여기저기 묻고 또 물어 세상에 내놓아도 간과한 문장 하나, 어긋난 제목 하나에 ‘번역논란’ 꼬리표를 달아야 하는 번역자라는 직업의 애환을 어찌 내 직업의 거울이 아니라 말할 수 있을까. 편집자라면 동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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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회사에 고용되는 정규직 직업인 편집자와 달리 대부분의 번역가는 프리랜서로 일한다. 이 책으로 비정규 직업군이라는 점에서 오는 고뇌와 힘듦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 회사에 다니다 보면 종종 ‘회사 밖’ 사람에게 야박하게 구는 경우가 생긴다. 회사 경비를 줄이라는 압박에 못 이겨 외주 디자이너, 외주 교정자, 번역가의 비용을 매몰차게 깎기도 한다. 정말이지 그러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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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일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미래의 자신의 밥벌이를 위해서라도 회사 밖 사람에게 정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모든 편집자는 미래의 프리랜서다. “출판편집자의 실무 정년이 마흔”이라고 했다. 마흔이 넘은 편집자가 이 업계에서 일을 지속하는 방법은 일인출판사를 차리거나, 지금 월급의 절반만 받으며 더 열악한 환경으로 이직하거나, 프리랜서로 전향하는 방법밖에 없다. 지금은 회사에 적을 두고 있지만 언제 프리랜서로 전향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남의 피땀을 존중하지 못하는데 마흔 이후 프리랜서로 선 자신을 누가 존중하겠는가. 스스로 회사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프리랜서가 남이지만, 내 미래라고 생각하면 서로의 노동을 존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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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는 출판 생태계에서 분명 갑의 위치는 아니다. 어쩌면 업계 피라미드 말단을 차지할지도 모르겠다. 가장 약한 존재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 들여다보면 그 업계 수준이 보인다. 자신이 건전한 출판 생태계를 위해 어느 편에 서야 할지 곰곰 생각해보면 좋겠다. 만약 회사가 편집자에게 ‘후려치기’를 강요한다면 외주자와 한 번 일하고 말 사이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회사를 설득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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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 비용을 터무니없는 가격에 내보내라는 회사의 강압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에 나는 타 출판사 편집자들을 수소문해 주요 출판사들의 외주 비용 평균치를 계산한 다음, 이를 표로 작성해 상사에게 보여주었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주장이 아닌 증거를 보이면 된다. 게다가 그 돈, 많지도 않다. 손익분기 때문이라면 책값 1,000원 올리면 상쇄된다. 고작 1,000원 때문에 동료의 노동가치를 폄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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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는 박산호 번역가가 한 편집자에게 “어떨 때 일하는 게 가장 즐거워요?”라고 물었다는 내용이 언급된다. 그 편집자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잘 맞을 때요”라고 대답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보면 좋겠다. ‘내 동료는 나와 일하는 게 즐거울까.’ 이 질문을 떠올린다면 자기 입장에 사로잡혀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는 우는 범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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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여섯 개 출판사를 다녔다. 두 달 만에 쫓겨난 곳부터 8년 근무한 회사까지 다양하다. 상사 앞에서 저자에게 성희롱을 당한 경우도 있고, 원치 않는 강요와 폭언, 무시로 회의감에 빠질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계속 이 언저리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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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놈의 일을 끙끙대며 버티는 이유는 3년마다 이직하는 회사가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들 덕분이었다. 자존감이 무너졌을 때 ‘항상 네 옆에 있지는 못하겠지만 뒤돌아보면 그 자리에 있는 선배가 되어주겠다’고 말해준 사수가 있었고, ‘나와 함께 일하면 존중받는 느낌이 든다’고 말해주는 외주자가 있었다. 부족한 기획을 밀어주고 보완해준 상사와 기꺼이 함께해준 저자들도 한몫했다. 번역가, 저자, 디자이너, 마케터 등 다들 조금씩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서로를 헤아릴 줄 아는 우리가 책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그 일이라는 걸 하고 있었다. 책은 나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그들과 함께 만든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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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출판의 위기는 줄어드는 독서인구 탓도, ‘공부를 안 하고 끈기가 없어 쉽게 그만두는 요즘 애들’ 때문도 아닐지 모른다. 서로의 일을 존중하지 않는 업계는 잘될 수가 없다. 우리가 함께하는 즐거움을 서로에게 선물하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상대의 입장에서 서로를 바라봐줄 수 있도록 꾸준히 서로를 헤아리는 책을 만들고, 쓰고,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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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노승영, 박산호 저 | 세종서적
제목처럼 번역가의 일상에서부터 번역 테크닉, 번역가 되는 법, 번역료 문제, 선배 번역가로서 추천하는 영어 공부법과 미래의 번역가들을 위한 참고 도서 목록까지 온갖 주제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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