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Book

동아시아, 대륙과 해양이 맞서다.

김시덕. 동아시아, 대륙과 해양이 맞서다. 메디치, 2015.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5634347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일본이 1592년 임진왜란을 통해 동북아시아의 주요 세력으로 등장하여, 1945년 태평양전쟁에 패전할때까지 20세기의 전환기에 이 지역의 패권을 놓고, , 러시아, 미국 제국과 경쟁하였다. 일본과 가장 인접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500년 동안 이어져 온 일본의 세력확장에 지속적인 피해를 경험함에 따라, 우리나라를 선량한 피해자로 놓고 일본을 악당으로 간주하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저자는 지난 500년 동안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환경의 변화를 논의함으로써, 편협한 선악대결구도에서 벗어나, 근미래 한반도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전략적 논의를 촉구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고대와 중세에 한반도는 대륙에 인접한 독립 세력으로서, 대륙의 정세가 한반도 안보의 선결요인으로 작동하였다. , /당의 한반도 침공 실패 이후, 대륙은 한반도의 직접통치를 포기하고 중원의 안보에 위협을 가하지 않는 한 독립을 보장하였다. 지정학적 의의에 따라 대륙에서 세력교체가 벌어질 때는 한반도가 외세의 침입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 한반도의 왕조는, 국방과 외교의 총력을 대륙 방면에 투여한 반면, 해양 방면은 걸리적 거리지만 않으면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그러나 대항해 시대에 이르러 유럽을 중심으로 한 해양무역 체제에 일본이 독립세력으로 편입함에 따라,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 세력이 패권을 다투는 요충지에 자리하게 된다. 이때 조선은 정세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였으며, 20세기의 전환기에 이르러서는 외세에 휘둘리다가 1910년에 왕조가 몰락하게 된다.  

책의 제목은 대항해시대 이후 동아시아 시대조류인 대륙-해양 체제 대립을 소개하는 데 국한하는 듯 하지만, 저자의 의도는 정세의 변화에 따른 한반도의 지정학적 의미 변화를 이해하는 데 있다. 이러한 이해는 적절한 전략 논의의 시발점이리라. 다만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 두 가지가 있어 이를 지적한다.

첫째, 한반도의 지정학적 의미 변화는 저자가 제기한 것보다 더 다양했다. 저자는 해양 방면의 경제/군사적 중요성이 증가함에 따라, 한반도의 지정학적 의미가 대륙 중심 체제의 변방에서, 대륙/해양 체제의 각축지로 변했음을 주장한다. 이러한 대립 구도는 현재의 대륙/해양 체제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의미를 강조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과연 대항해 시대 이전 한반도는, 저자가 말한 대로, 줄곧 대륙 중심 체제의 변방에 머물러 있었을까? 이러한 구도가 원-고려 관계나, -조선 관계를 설명할 수 있지만, -(, 몽고)-고려의 관계나 훈--조선 및 수()-돌궐-고구려-백제-신라-왜 관계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전자의 경우 저자가 말한 중원-변방의 시각은 어느정도 합당하나, 후자의 경우 저자의 시각을 적용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송과 요는 왜 변방에 있는 고려를 자기 편에 끌어들이기 위해 그렇게 공을 들였을까? 문제는, 이 사례들을 예외로 치부하기에는 한반도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오류는 동아시아 체제를 대륙/해양의 이분법적인 구도로 이해하는 데서 비롯한다. 조금 더 역사에 부합하는 이해를 위해 나는 다음의 당연한 원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적의 적은 동지이니, 주변은 하나씩 제압하고, 뒤를 다져 앞으로 나가되, 들인 만큼 뽑아 낸다.” , 중원이 고원이나 강남이나 초원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요동이 안정되야 하며, 요동에 진출하려 하면 나머지 셋을 제압해야 한다. 한무제의 요동진출은 중원이 강남과 고원, 초원을 모두 제압하거나 포섭한 후에나 가능했다. 위가 촉과 오를 치기 위해서, 수와 당이 체제를 완성하기 위해, 이들은 요등을 반드시 제압해야 했다. 이것은 야욕이 아니라 운명을 건 대결이다. 이때 중원에게 한반도는 멀고 초원과 요동에 공공의 적이 있으니 동지가 된다. 하지만, 패권이 초원에서 나올 때, 즉 만주가 패권의 기반일 때, 중원에 요동이 배후이듯 만주에 한반도가 배후이므로, 이들은 반드시 한반도를 제압해야 한다. 거란족과 몽골족과 여진족이 중원에 진출할 때 어김없이 한반도를 침입한 것은 이러한 이유이다. 한반도를 제압하지 못하면 중원에 전력을 기울일 수 없는데, 예를 들어, 요가 중원에서 송에게 완전한 우세를 점할 수 없었던 것은, 고려와 싸워서 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둘째, 일본의 대륙 진출 야욕이 고대부터 지속된 것이라고 보는 것은 의문이다. 진구코쿠 천황 및 임라일본부 등 6세기 이전의 일본 고대사는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역사의 소비자인 내가 이를 논증하는 것이 주제넘는 듯 싶기도 하지만, 의도가 진실을 덮는 세상에서 오히려 단순한 상식이 진실에 근접하지 않을까? 여기서도 나는 한 가지 당연한 원리를 소개한다. “이웃끼리 싸우고, 이긴 자는 남으며, 진자는 떠난다.” 고대부터 빈번하게, 중원에서 밀려난 자들은 요동으로 갔고, 요동에서 밀려난 자들은 한반도로 이동했다. 이것은 놀랍지 않다. 초원의 동부에서 밀려난 훈족, 돌궐족, 거란족, 몽골족도 초원의 서쪽으로 밀려났다. 살기 좋은 곳을 놓고 싸우고, 진자는 덜 한 곳으로 가는 것이다. 졌으니까. 이럴 진데, 한반도에서 밀려난 자들이 일본에 유입되지 않았을 이유가 없다. 이때, 우리가 요동을 우리의 고토로 생각하듯이, 한반도에서 밀려난 왜인이 한반도를 그들의 고토로 상정하는 것은 크게 이상하지 않다

다만, 이 과정에서 왜곡이 일어나는 것이 유감이다. 내가 지인들과 역사를 논할 때 많이 듣는 얘기가 일본과 영국은 섬나라이므로 외세를 쉽게 물리치고 대륙에 진출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감정이 있으니, 원수 진 적 없는 영국을 놓고 보자. 영국은 기원후1세기 이후 4세기 동안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독일 북부의 작센 족이 이주하여 현재 영국인의 원류가 된다. 중세에 들어 동북부 지역은 바이킹의 지배를 받았고고, 프랑스 노르망디의 노르만족이 영국을 침입하여 작센족 지배세력을 완전히 축출했다. 영국이 프랑스를 침입한 것으로 알려진 백년 전쟁은 노르망디 공작이 프랑스 왕위 경쟁에 참여한 것이다. 영국이 외세를 격퇴하기 시작한 것은 나폴레옹 및 히틀러 전쟁과 같이 최근의 일이다. 그럼에도 영국이 꾸준히 외세를 물리치고 대륙에 진출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유입 세력이 주류를 교체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부여족이나 조선족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아이누족을 몰아내고 주류가 된 후, 백제 멸망으로 한반도와 교류가 끊긴 일본이 지속적으로 한반도에 진출한 것처럼 묘사된 것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상기한 것 이상으로 많은 인식의 충돌이 있었지만, 논쟁거리는 아니라고 본다. 이 책은 일본의 문헌을 근거로 하여 최근 5세기 동안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의의를 일본의 시각으로 소개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기분 나쁜 것은 한국인으로서 당연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지정학적 환경의 변화, 즉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충돌을 이해하는 것이다. 편협한 인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리의 생존을 높이고 번영을 불러오는 것이기에, 서슴없이 이 책을 친구들에게 권한다.

Comments

사랑방지기 2015.08.24 18:43
5세기 동안 변화를 연구했다니, 주제가 무척 의미심장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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