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Book

『기적의 사과』, 이시카와 다쿠지

맛있는두유 0 5,180 2012.05.29 22:52


일일일읽's comment :

논픽션 문학의 빼어난 걸작입니다. 세계 최초로 무농약 사과 재배에 성공한 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 세계 최초로 썩지 않는 사과를 생산하는 업적까지 이룩해낸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펼쳐집니다. '한 가지에 미치면 반드시 답을 찾는다'는 말에서 전부 드러나는 주인공 기무라 씨의 삶은 자신의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사람이거나 아직 목표가 없는 사람이거나 모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직접 목도하는 현대판 신화라는 점에서 한층 그러합니다.


기적의 사과



이 책은 우선 책 제목이기도 한 '기적의 사과'가 어째서 기적인지부터 설명한다. 그래서인지 책 초반부에서부터 농약이나 벌레에 대한 상세한 설명들이 나오는데, 이런 내용들이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정겹게까지 느껴지는 것은 읽어나가는 입장에서 주인공 기무라 씨가 이룩한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일러주고 함께 놀라워 하고 싶어하는 저자의 순박한 의도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책의 저자는 저명한 논픽션 작가라고 하는데 그런 저자가 주인공인 기무라 씨의 삶과 그가 보여주는 태도에서 얼마나 진한 감동을 받았는지가 책 구석구석에 묻어난다. 그 감동은 한 사람이 어떤 위대한 일을 해냈다는 사실에서 오는 게 아니라, 그 일을 해내기까지 실로 형용키 어려운 고난의 세월을 겪어 왔음을 아는 데서 절절히 전해져 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머리말에는 기무라 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어떻게 농약도 안 쓰고 사과를 키웁니까?"

"자주 물어보는 말인데, 나도 잘 모르겠어. 아마 내가 너무 바보라 사과나무가 어이없어서 열매를 맺어 주는지도 모르지. 하하하."

그때는 그가 연막을 친다고 생각했습니다.

6주에 이르는 우리 촬영은 그렇게 작은 의혹을 품은 채 시작되었습니다. 촬영을 시작하고 보니, 기무라 씨는 잘 웃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한 농담에 자기 혼자 웃고, 다른 사람 말을 듣고 도 웃고, 심지어는 고통스러운 추억을 이야기하는데도 무슨 영문인지 마지막에는 웃었습니다. 함께 갔던 음향 스태프가 처음에 쓰가루 사투리를 잘 못 알아들은 탓도 있겠지만, "기무라 씨는 왜 저렇게 아무 의미도 없이 웃지"라며 의아한 표정을 지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취재를 해나갈수록 기무라 씨의 웃는 얼굴 뒤에는 깊은 고뇌와 다른 사람에게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과거가 감춰져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새 인생의 밑바닥에서부터 기어 올라오며 고난을 이겨 낸 기무라 씨의 미소에 함께 웃음 짓게 되었습니다.


순수한 열정으로 무농약 사과 재배에 도전한 기무라 씨가 인생의 나락에까지 떨어졌던 이유는 간단하다.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사과를 재배한다는 것은 극도로 발달한 현대 과학 수준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무농약 쌀농사 같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과수원계에서 철칙과도 같았던 사실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마침내 기적을 일궈낸 기무라 씨의 삶은 마치 수백 년 동안 중세 시대를 지배하던 천동설을 뒤집어 버린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나는 역사의 생생한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한 진한 감동을 준다. 더욱이 그것이 한 사람의 삶만이 아니라 한 일가의 희생을 통해 일궈낸 것이기에 그 감동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중학교 때 진공관 컴퓨터 제작에 도전할 정도로 남다른 호기심과 과학 정신이 배어 있던 기무라 씨의 기질이 그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희생까지 감수해 주었던 남다른 가족의 지원 속에 꽃 피워서 마침내 기적의 사과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남편이 웬일로 사과 밭에서 마음 약한 소리를 한 적이 있다.

"이제 포기해야 할까."

물론 진심이 아니란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버지도 고통받고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싶어서 아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큰딸이 예상치도 못한 반응을 보였다.

평소에는 늘 어른스럽고 조용한 아이가 낯빛을 바꾸며 버럭 화를 냈던 것이다.

"그건 말도 안 돼! 우리가 뭣 때문에 이렇게 가난하게 사는데!"

아버지의 꿈은 어느새 딸의 꿈이 되어 있었다.

"그런 사위는 내쫓아 버려"라고 말하는 친척들 앞에서 방패가 되어 기무라 씨를 끝까지 감싸 준 사람도 장인이었다. 딸과 손자들을 처참한 궁지에 몰아넣었는데도 장인은 단 한 번도 기무라 씨에게 무농약 재배를 포기하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마침내 기무라 씨는 현대의 과학 수준으로도 불가능했던 무농약 사과 재배에 성공한다. 그것을 가능케 했던 것은 자연의 힘이었다. 앞서 "아마 내가 너무 바보라 사과나무가 어이없어서 열매를 맺어 주는지도 모르지"라던 기무라 씨의 말은 사탕발림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무농약 사과 재배에 성공했던 것은 기무라 씨의 깨달음과도 같은 발견의 순간이 있었던 덕분이지만, 그것은 다름 아니라 자연의 힘에 대한 발견이었을 뿐이다. 그 발견을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나누려는 기무라 씨의 열정적인 이야기가 책 속에서 펼쳐지는데, 이런 이야기들이 현대 문명에 대한 준엄한 경고라든지 자연의 흐름을 도외시하는 현대 농법에 대한 비판이라든지 하는 쪽으로 들리기보다는 수업 중에 선생님이 잠시 딴 얘기겸 들려주는 짤막한 이야기처럼 재미있고 정겹게 들린다.


"그래서 밭 여기저기에 덫을 설치했지. 그랬더니 새끼 너구리가 걸린 거야. 어미 너구리가 바로 옆에 있었는데,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칠 생각을 안 하더군. 덫을 풀어 주려고 손을 뻗었더니 새끼 너구리가 이빨을 드러내며 난폭하게 굴더라고. 가여워서 장화 발로 머리를 밟고 덫을 풀어 놔주었지. 그런데 도망치지 못하는 거야. 눈 앞에서 어미 너구리가 새끼 너구리의 다리에 난 상처를 정신없이 핥아 주더군. 그 모습을 보니 내가 큰 죄를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더 이상 먹으러 오지 말라'고 하면서 못생긴 옥수수를 모아다 밭 가장자리에 놓아뒀지. 옥수수를 키우다 보면 빠져 버린 내 이 같은 옥수수가 꽤 나오거든. 내다 팔 수 없는 불량품이지. 그걸 전부 한쪽에 모아 뒀어. 다음 날 아침에 밭에 나갔더니 한 개도 안 남고 다 사라졌더라고. 그래서 덫을 치우고, 수확할 때마다 이 빠진 옥수수를 모아 놓기로 했지. 그 후로 너구리 피해는 거의 사라졌어. 그걸 보니까 인간이 몽땅 가져가 버리는 바람에 피해를 입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 따지고 보면 원래는 너구리 서식지였던 곳을 밭으로 만들어 버린 거잖아. 먹이를 주면 너구리가 더 많이 모여들어 밭을 엉망으로 만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어. 정말 신기했지."

"으음, 어느 날 문득 벌레를 잡다가 요 녀석은 어떻게 생겼을까 싶더라고. 그래서 집에서 돋보기를 가져다가 찬찬히 들여다봤지. 그랬더니 이게 말이야. 엄청나게 귀여운 거라. 그런 걸 티 없이 맑고 고운 눈동자라고 하나, 커다란 눈으로 말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거야. 그 모습을 보고 나니까 미워할 수가 없더라고. 내가 워낙 구제 불능 바보라서 그만 못 죽이고 잎으로 다시 돌려보냈어. 나에게는 얄밉기 그지없는 적인데 말이지. 줄곧 해충이라며 미워했는데 자세히 보니 너무 귀여웠어. 자연이란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는 익충 얼굴을 관찰했지. 해충을 먹어 치우는 고마운 벌레잖아. 그런데 이게 아주 무섭게 생긴 거야. 풀잠자리 같은 건 흡사 영화에 나오는 괴수더라니까. 아하, 이런 거구나 싶더군. 인간은 자기 사정에 따라 해충이니 익충이니들 하고 나누지만, 잎을 먹는 벌레는 초식 동물이라 평화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 그런데 그 벌레들을 잡아먹는 익충은 육식 동물이잖아. 얼굴이 사나운 게 당연하지. 그렇게 매일 벌레를 잡아 대면서 벌레에 관한 건 아무것도 몰랐던 거야."



이같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늘어 놓는 기무라 씨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태도로 살아왔을까. 이 책은 기무라 씨의 업적보다는 그런 업적을 이뤄낸 기무라라는 사람을 가능한 진솔하게 있는 그대로 담으려고 노력한 책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기무라 씨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면서 기무라 씨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 자살을 결심했다가 기무라 씨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바꾼 한 젊은이의 이야기가 있다. 그 젊은이에게 들려 주었다는 기무라 씨의 이야기는 우리들도 진지하게 귀 기울여야 할 내용이다.



"......으음, 어쨌거나 마음을 고쳐먹어서 다행이라고 했던가? 그러고 나서 바보가 되면 좋다고 말해 줬지. 겪어 보면 알겠지만, 바보가 되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거든. 하지만 죽을 마음을 먹을 정도라면 그전에 한번 바보가 되어 보는 것도 좋아. 똑같은 생각을 품어 본 선배로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어. 한 가지에 미치면 언젠가는 반드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거지."

한 가지에 미치면 언젠가는 반드시 답을 찾는다.

그 말은 기무라 씨의 인생 그 자체였다.


기무라 씨가 거쳐 온 인고의 세월은 결국 온 마음으로 사과나무와 마주 서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기무라 씨가 "바보가 되면 좋아"라고 한 말은 그런 의미에서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험과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경험과 지식을 쌓아 나갈 필요가 있다. 때문에 세상에서는 경험이나 지식이 없는 사람을 바보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람이 진정으로 새로운 뭔가에 도전할 때, 가장 큰 장벽이 되는 것 역시 그 경험과 지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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