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Book

『운명이다』, 노무현재단 엮음

맛있는두유 0 4,862 2012.05.29 22:56

일일일읽's comment :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을 지낸 노무현의 자서전입니다. 한 국가의 대통령이었던 인물이 국가 내외의 정세를 어떻게 이해했고, 그래서 어떤 결단을 내리고 행동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 본인이 직접 쓴 자서전을 읽는 것만큼 좋은 게 없습니다. 특히 노무현이 스스로도 얘기하듯 어째서 '실패'했던가를 반추하는 데 중점을 두는 자서전이란 점에서 여타 다른 '영광스러운' 자서전과는 색다르게 읽힙니다.

운명이다 대표 이미지 

이 자서전은 "인간 노무현이 자신의 삶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에 관한 기록"입니다.

으레 정치인의 자서전은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인 정치적 상황과 신념 등을 파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료로 간주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제16대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의 자서전도 그런 사료학적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윗 인용구에서 보듯 이 자서전에 실린 내용들은 모두 어떤 일관된 맥락 하에 선택된 것이다. 그래서 역으로 어떤 내용들이 자서전에 실릴 내용으로 선택되었는가를 살펴 보면 책 이면에 흐르고 있는 그 맥락을 읽어낼 수 있다. 우선 이 자서전은 스스로 실패한 대통령임을 자인하는 내용과 함께 시작된다. 노무현의 말대로 이 책은 '시행착오와 좌절과 실패의 이야기'다. 먼저 성공과 실패를 받아들이는 노무현의 태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생에서 성공은 무엇이고 실패는 또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기준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굳이 성공과 실패를 따지고 싶지 않다. 돌아보면 나는 한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았다. 때로 제어하기 힘든 분노와 열정에 사로잡혀 피할 수도 있었던 상처를 받거나 입힌 일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양심과 직관이 명하는 바에 따라, 스스로 당당한 사람으로 살고자 몸부림쳤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렇게 남의 눈에 신경쓰기보다 스스로에게 당당하고자 했던 노무현의 태도가 불과 한 페이지를 두고 극명하게 바뀐다. 노무현 자신이 피의자가 된 직후의 일이다.

나는 대통령을 했지만 정치적 소망을 하나도 성취하지 못했다. 정치를 함으로써 이루려 했던 목표에 비추어 보면 처절하게 실패한 사람이다. 정치인으로서는 실패했지만 시민으로 성공해 그 실패를 만회하고 싶었다. 그런데 대통령을 할 때보다 더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제 다시는 어떤 기회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 구절에서 느껴지는 것은 희망 없는 절망뿐이다. 이렇게 한 페이지를 두고 태도가 바뀌는 모습에서 이 자서전의 특징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책 속 내용이 동일한 시점에서 쓰여진 것이 아니라 노무현이 시시때때로 남겼던 자필 원고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결과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래서 각 시점마다 인간 노무현이 느꼈던 고통과 고뇌가 생생하게 전달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졌다. ...... 실패는 뼈아픈 고통을 준다. 회복할 수 없는 실패는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다. 나는 이 고통이 다른 누구에겐가 약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쓴다.

외람되지만 나는 노무현의 부인이자 영부인이었던 권양숙 여사가 돈을 받았던 일을 두고 노무현이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해서 이 책 속의 내용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나 그 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다만 한 곳에서 암시해주는 내용이 있었다.

아내는 다른 평범한 변호사나 사업가의 아내들처럼 살고 싶어 했다. 특히 경제 생활에 관한 한 나를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 돈이 없어도 아주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지 않으면 말을 하지 않았다. 아내가 말을 하면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뜻이기 때문에 무슨 수를 쓰든 돈을 구해다 주어야만 했다. ...... 대통령이 된 후에도 아내는 경제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나를 별로 신뢰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모두가 내 책임이다.

여러 정치적 사건이나 현안들, 그리고 세력 있는 정치인들에 대한 노무현의 감상이나 논평에 포인트를 두고 이 책을 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노무현을 궁지로 몰았던 사건들에 대해서나 김영삼, 김대중, 이회창, 이명박, 문재인 등의 정치인들에 대해 노무현이 받았던 인간적인 느낌이 어땠는지를 흥미롭게 읽었다. 하지만 본디 자서전이란 정치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위해 읽을 만한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역시 한 인간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읽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도저히 어찌 해볼 도리가 없어 '운명'이란 단어까지 끌어 쓰게 만들 정도로 노무현을 체념하게 만든 그 아득한 답답함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이었을까.

모든 것이 내 책임이었다. 대통령을 하려고 한 것이 분수에 넘치는 욕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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